과학벡트 수정안 논란 증폭
원안이냐, 수정안이냐!
국제비즈니스과학벨트(과학벨트) 수정안 논란이 자칫 `제2의 세종시 사태`처럼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일엔 여야 정치권이 대전서 최고위원 회의를 각각 마련하고 과학벨트 수정안에 대한 입장 대결을 펼쳤다. 5일엔 안철수 의원이 ETRI를 찾아 공론화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수정안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여야가 서로 답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다.
과학기술계는 여야 대결에 잘못 끼어들어 오해 살 것을 우려해 중간자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만큼 여야 대결이 격해지고 있다.
출연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논쟁의 불꽃이 이상한 곳으로 튀는 느낌”이라며 “입장이야 있지만 의견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 밝히기도 부담스럽다”고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그만큼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는 얘기다.
◇IBS 이전, 배경 뭔가
이번 논란의 시발은 부지매입비에 있다. 정부가 지난해 과학벨트 거점지구인 신동 및 둔곡지구 344만3000㎡의 부지 매입 예상비용 7200억원을 대전시와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대전지역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당시 대전시도 재정이 열악해 부지매입비를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대전시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황폐화돼 가고 있던 엑스포과학공원과 맞물리면서부터다.
염홍철 대전시장이 지난해 엑스포과학공원을 제2의 롯데월드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으나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엑스포과학공원의 부지 전용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나타내면서 대전시가 딜레마에 빠졌다.
때마침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대전시장을 지낸 박성효 대덕구 의원(새누리당)이 `엑스포과학공원 창조경제 기지화` 방안을 제기하면서 대전시의 골칫거리를 단박에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동·둔곡 지구 부지매입비 예산 확보가 안돼 골치를 앓던 미래부 또한 대전시 입장과 맞아 떨어졌다. 이때부터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기초과학연구원(IBS) 위치 변경이 탄력을 받게 됐다.
IBS 입장도 마찬가지. 건물하나 없이 R&D 인력 충원은 물론이고, 외국인이 오더라도 보여줄 것 하나 없는 셋방신세를 면할 수 있는데다, 건물 조기착공이 가능해진다.
◇“원안추진-수정안” 대립 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과 해당지역 주민들은 과학벨트 원안 추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중이온 가속기와 함께 벨트의 핵심 축인 IBS가 엑스포과학공원으로 빠져 나가면 과학벨트가 반쪽짜리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라는 지적이다.
수정안에 따르면 IBS는 당초 둔곡지구에 52만5000㎡(16만평)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었으나 엑스포과학공원으로 옮기며 면적은 26만㎡(7만8000평)로 줄어들게 된다. 대신 대전시는 엑스포과학공원 부지에 2500억원을 들여 첨단기업과 창업공간, 과학도서관 등으로 활용할 사이언스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예산은 미래부가 500억원, 대전시가 민자를 통해 2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민주당 측은 “수년간 과학기술인들이 고민해 만든 과학벨트 원안을 1개월 만에 바꾼 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대전시 꼼수”라며 “신동지구에서 빠지는 IBS자리에 산업단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곳이 블랙홀이 돼 주위 산업기반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창용 대전시 과학특구과장은 “비록 IBS 면적이 줄긴 해도 당초 IBS가 들어서려던 둔곡지구 면적은 그대로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면적이 늘어나는 셈”이라며 “정주여건도 이쪽이 더 낫다”고 말했다.
쟁점은 또 있다.
기능지구 역할 축소론이다. 사실 이를 우려하는 청원, 천안, 연기 지역구 의원의 반발도 거세다. 과학벨트 거점지구가 대전 권역의 북남쪽 끝자락인 `둔곡 및 신동`지구로 돼 있지만, 이곳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청원이나 연기, 약간 떨어져 있는 천안 등이 기능지구로서 산업화 활성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기능지구 역할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충청권 균형 및 공동개발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동안 지지부진한 과학벨트 조성사업과 관련해 자신들의 위상과 조직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며 조바심을 내던 IBS가 지나치게 단기적 또는 현실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 IBS 해체론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IBS가 사이트랩에 돈만 나눠주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과 함께 하는 일없이 인력만 낭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배경이다.
오는 2019년께 완성될 중이온 가속기와의 R&D 시너지 감소 우려도 제기된다. 과학벨트는 기초과학 육성 및 성장동력화의 근간을 가속기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여야 간 입장차가 제2의 세종시 사태처럼 극한대립으로 비화돼 장기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로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은 “KAIST나 출연연구기관이 가까이 있어 시너지도 날 것”이라며 “원안이나 수정안 모두 장단점이 있으나 시점상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안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