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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급와인 `로마네 콩티`는 포도 작황에 따라 해마다 생산량이 들쭉날쭉한다. 포도 품질이 일정 기준에 못 미치면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프랑스 문화와 영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정상의 와인으로 자리 매김한 이유다. 프랑스의 명품 샴페인 `동 페리뇽`은 18세기 수도사 동 페리뇽이 처음 마시는 순간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다”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역사적 문헌에 전혀 근거가 없는 페리뇽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샴페인의 전설로 매년 동 페리뇽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
흔히 `명품(名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고가의 사치품을 떠올린다. 그러나 명품을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가격이 아니다. 소비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제품. 지급하는 가격 이상의 실용적 가치와 뚜렷한 상징적 가치를 동시에 주는 것. 이것이 명품이다. 그래서 똑같은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명품을 만들기는 어렵다. 수작업을 통해 고객 맞춤형으로 소량을 생산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제조업의 진화 과정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명품의 길을 ?아간다. 과거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을 애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스리아와세(擦り 合わせ)`다. 도쿄대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가 처음 사용한 스리아와세는 `서로 부딪치며 조정하고 통합한다`는 뜻이다. 산업적으로는 자동차, 디지털가전 등 제조분야에서 여러 업체가 협력업체로 참여하는 대량 생산체계를 말한다. 지난 1970~1990년대 일본은 스리아와세 방식으로 세계 제조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제조업 전체가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금은 제조장비와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면 어떤 업체라도 원하는 제품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 거대한 설비와 수천 명의 종업원이 없어도 제조업 도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싼 가격에 제품을 생산해주는 중국 제조라인과 시제품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는 3D프린터 보급이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그 결과, 새로운 강자(强者)가 등장했고 일본 업체들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수직통합형 `스리아와세` 방식이 오히려 제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독(毒)으로 작용한 것이다.
`롱테일 경제학`으로 유명한 크리스 앤더슨은 일반 가정에서 개인이 직접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데스크 톱 제조업 시대`를 예견했다. 그가 2011년 말에 출간한 `메이커스(MAKERS)`에는 PC처럼 집에 3D 프린터로 디지털 공방(工房)을 설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스마트 손목시계, 디지털 온도조절장치 등 아이디어성 소형 가전을 만드는 제조기업이 수십 개씩 등장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가 아닌 하드웨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를 유치한다. 그리고 아시아지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공식을 따른다.
소비자들은 스토리가 있는 아이디어 상품에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누가 제품을 만들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개인이 메이커가 되는 1인 제조업 시대가 열린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