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VS 밴 `20억 공방 미스테리`

카드와 밴(VAN)업계가 3년전 금융감독원 주도로 실시된 가맹점 판매시점관리(POS)단말기 보안 강화 비용 20억원 정산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2010년 말 금융감독원과 카드업계는 약 80억원의 자금을 모아 전국 POS단말기 20여만대에 표준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보급사업을 펼쳤다. 불법복제 카드가 기승을 부리면서 나온 POS단말기 보안강화 조치였다.

카드사는 금융감독원의 지시를 받아 80억원의 자금을 출연했고, 별도 POS TF까지 발족했다. 사업 지휘는 여신금융협회가 맡았다. 가맹점에 설치한 POS단말기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관리 대행사인 밴업계가 나서야 했다. 금융감독원과 협회는 국내 밴사에게 보안프로그램 설치를 주문했고 비용은 사후정산 형태로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된 이후 주기로 했다.

자금 80억원 중 약 30억원이 투입됐다. 13개 밴사가 자비를 들여 프로그램을 깔았다. 보안프로그램은 소프트포럼과 소프트캠프에 의뢰해 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보안 SW 설치 후 POS단말기가 수시로 멈추거나 먹통이 되는 사례가 발생한 것. 가맹점주 항의가 빗발쳤다. POS단말기 제조사가 제각각이어어서 호환이 되지 않았다. 툭하면 결제 승인이 멈췄다. 이 과정에서 먹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밴사들은 약 20차례에 걸쳐 보안 SW업그레이드까지 실시했지만 먹통 현상은 지속됐다. 보안 SW모듈을 제공한 소프트포럼과 소프트캠프는 가맹점 보안 모듈 공급을 중단하고 해당 사업까지 접은 상태다.

이 후 보급 사업은 중단됐다. 하지만 이미 깔린 보안프로그램 구축비용 30억원 중 약 20억원이 정산되지 않았다. 밴사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협회가 비용을 다 지불할 테니 보안 SW설치를 깔아달라고 해서 자비를 털어 보급 사업에 나섰지만 이 후 정산된 금액은 10억원에 불과했다”며 “갑을의 횡포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밴사 관계자도 “SW 설치 후 잦은 기기 오류가 발생해 각 밴사들이 수차례 가맹점을 방문해 사후관리까지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단말기에 문제가 발생하자 그 책임을 밴사에 떠넘기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반면 카드업계와 여신금융협회는 이 같은 밴사의 태도에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미지급된 자금 정산을 해주기 위해 밴사에 증명 자료를 요청했지만 해당 정산자료를 넘겨준 곳은 2곳에 불과했다”며 “정산을 해주겠다고 해도 오히려 밴사가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이는 결국 책임 공방으로 비화됐다. 카드업계는 밴사에게 SW개발부터 사후관리까지 맡겼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밴사는 정부가 의뢰해서 이를 실시한 것일 뿐 해당 책임은 카드사에 있다고 맞선다.

금융감독원은 SW보안 프로그램 보급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되자 별도의 하드웨어를 POS단말기와 연결해 고객 정보가 POS로 들어가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2차 보급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보급사업에도 밴사와 카드사가 충돌했다. 여신금융협회가 제품 개발과 공급사로 큐텍을 지정했기 때문.

밴업계는 “협회가 큐텍이란 기업을 단독으로 지정하고 밴사 도움이 필요없으니 이번 보급사업에서 빠지라고 통보한 후, 입장을 번복했다”고 말했다. 밴업계는 여신금융협회의 POS보안 보급사업에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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