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지난 13일 가상자산시장 '법인계좌 허용'을 발표했다. 2017년 12월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에 따라 규제해 오던 법인의 가상자산거래를 7년여 만에 사실상 푼 셈이다. 배경이 뭘까. 시장에선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친 가상자산' 정책을 꼽는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시작하자마자, 가상자산 보관에 장애가 되는 SEC(증권관리위원회)의 가이드라인 'SAB 121'을 철회·명령한 데 이어, 2월 5일엔 스테이블코인 법안(일명 'GENIUS' 법안) 등을 급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 '금융의 변방'에서 '금융 중심축'의 하나로 급부상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글로벌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게 가상자산 제도화를 서두르게 됐다는 의견이다.
둘째, 해외에선 대부분 법인의 가상자산거래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거래가 가능한 국가 중 법인거래를 금지한 국가는 거의 없는 데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OECD 주요국은 법인의 가상자산거래와 함께 과세도 부과하는 등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경우 2024년 법인거래 비중이 80%일 정도로 활발하다. 셋째, 작년 7월부터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결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 블록체인 신사업 수요가 증가하면서 법인의 가상자산거래를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고려 요인이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부작용과 과열을 막기 위해 상반기엔 현금화 목적의 법인계좌 발급의 매도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하반기에 위험 감수 능력을 갖춘 기관투자가에 대해 투자·재무 목적의 매수·매도에 대해 점진적으로 시범·허용(Pilot Test)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상 법인은 상반기엔 범죄수익 몰수 등 법적 근거가 있는 법집행기관(예 : 검찰, 국세청, 관세청), 기부단체와 대학 법인, 가상자산거래소만 하고, 하반기엔 '자본시장법상의 전문투자자' 중 금융기관을 제외한 상장사 및 전문투자자로 등록한 법인(3,500개), 전문투자자가 아닌 일반 법인의 경우는 시장 상황과 시범·허용 결과를 분석한 후, 2단계 입법과 외환·세제 등 제도 정비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장과 업계에선 당연히 환영 분위기다. 특히 가상자산으로 임금 지급을 하던 기업들로선 '가뭄의 단비'다. 한때 개인투자가 중심으로 세계 1~2위 거래를 기록하기도 했던 만큼, 법인 투자허용으로 재차 글로벌 가상자산시장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시장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우선 규모가 큰 법인의 참여로 시장 유동성이 증가하고 개인보다 장기 보유하는 법인의 성격상 가격 안정성 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시장 확대로 인한 김치 프리미엄도 완화될 전망이다. 둘째, 시장 신뢰도 제고 효과다. 법인·기관이 참여하면 개인 대비 체계적 규제가 가능해서, 시장 투명성과 신뢰도가 개선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셋째,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업계의 수익성 개선이다. 특히 가상자산거래소와 제휴한 은행의 경우 수익모델 다양화에 따른 수익 증가가 기대된다. 가상자산 수탁(Custody)은 물론, 법인계좌 확대에 따른 자금세탁방지(AML) 개발·제공, 법인들의 예금 및 송금 수수료 증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4년 상반기 케이뱅크의 총예금 중 제휴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 관련 예금은 3조 2천억 원(총예금의 17%)이었다고 한다. 이외에 가상자산 기반인 블록체인의 활성화로 신규사업과 고용 효과가 기대된다든지, KB은행과 빗썸의 제휴로 업비트의 가상자산 독주체제에 변화가 올 수 있단 예상도 나온다.
물론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있다. 자금 세탁과 법인의 가상자산 보관과 관리, 거래소의 이해충돌 등이 그것. 하지만, 금융당국이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거래 목적 및 자금의 원천 확인, 제3의 가상자산 보관·관리기관 활용, 거래소에 대한 매도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어서, 별 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는 게 시장의 다수 의견이다. 다만, 법인·기관투자가거래가 활성화되려면 대부분 감사를 받는 이들의 성격상 '가상자산의 투명한 공시와 평가시스템 구축'이 필수라고 보고 있다.
아무튼 법인계좌 및 거래 허용으로 가상자산시장의 활성화 '물꼬'는 터졌다. 하지만, 법·제도화 측면에선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여전히 초기 단계. 시장 참여자의 의견과 해외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되, 산학관정(産學官政) 협력으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더욱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