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음악평론가 jjinmoo@daum.net
해외 팝스타 내한 공연이나 국내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서도 `떼창`은 있다. 무대의 가수를 더욱 신나게 북돋우면서 장관을 만들어내는 이 집단 싱잉은 점잖게 앉아 박수만 치는 과거의 객석과 가장 큰 대비를 이룬다. 젊은 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를 뛰었던 밴드 들국화의 객석은 아무래도 40대 기성 세대가 중심이다.
![Photo Image](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04/25/416810_20130425101255_378_0001.jpg)
그런데 지난 4월4일부터 4월14일까지 서울 합정동 소재 인터파크 아트홀에서 열린 들국화 공연에서 어른 위주의 객석은 떼창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내가 찾는 아이` 등의 노래를 악 쓰듯 따라 불렀다. 전인권은 언젠가 들국화의 음악을 두고 `시대의 아우성`이라고 규정했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에 저항한 청춘의 폭발적 절규를 들국화가 대신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번 들국화 공연을 수놓은 `떼창`은 팝이나 아이돌 공연과는 다른 분위기를 피워냈다. 거리를 누볐던 그 격동기 시절의 순수하고 건강한 포효를 연상시키는 그 무엇이 있었다. 돌아온 들국화요, 돌아온 떼창이었다.
들국화가 돌아왔다고 하는 것은 쌍두마차 전인권과 최성원이 다시 뭉쳤기 때문이다. 마치 비틀스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처럼 원래 음악성향과 기질이 다른 두 사람은 들국화 초기에는 환상의 어울림을 빚어냈지만 2집 녹음할 때 이미 갈등하고 충돌했다. 라이브 앨범을 빼면 들국화 정규 작품은 딱 두 장뿐이다.
들국화는 주지하다시피 `전인권의 소리`와 `최성원의 곡 감성`이 생명이다. 최성원이 쓴 `그것만이 내 세상`, `사랑일 뿐이야`, `제발`, `내가 찾는 아이`를 전인권이 폭발하듯 지르는 게 진정한 들국화 음악의 정체성 아닌가. 팬들은 오랫동안 바로 이것을 못 본 것이다. 아쉬워하는 사람들 천지였다.
사실 음악관계자가 들국화 얘기를 꺼내면 늘 가졌던 궁금증이 “이제 두 사람이 안 싸워요?”다. 갈등했던 그 두 사람이 재회해서 현재 곡 작업에 매진한다는 점에서 들국화 재결합은 완성된 셈이다. 현재 둘은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해줄 정도로 관계를 완전히 회복했다고 한다.
공연에서 그들은 두 곡의 신곡 `걷고 걷고`와 `노래여 잠에서 깨라`를 공개했다. 단발의 성격이 강한 콘서트를 넘어, 옛날 곡을 우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곡으로 컴백 포인트를 잡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추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케이팝 전사와 인디 밴드가 독점하는 현실에 뛰어들어 정면승부를 펼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근래 들국화를 비롯한 돌아온 레전드들은 종전과 달리 공연과 새 앨범을 공통분모로 컴백하는 것이 특징이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아마도 들국화가 재결합을 하면서 음악계에 던지고 싶은, 아니 실제로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국내 음악계는 공산품이나 다름없는 아이돌 댄스 음악 아니면 서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유약하고 나른한 음악이 태반이다. 심지어 날카로워야 할 인디 음악마저 차분한 기조가 휘감고 있다. 음악적 강공(强攻)의 부재, 요즘 말로 `돌직구`가 거의 없다.
들국화라는 전설의 재림은 단지 과거 이름이 돌아온 것 아니라 강력한 아우성이 제 자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것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오랜 고질병인 다양성 회복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수십 년 동안 고음에서 갈라지곤 했던 전인권이 깨끗한 목으로 롤백 했다는 사실이다.
신기하게 어떻게 목소리를 되찾았는가 물었더니 전인권은 “나도 모르게 돌아왔어!”하며 너스레를 떤다. `사랑일 뿐이야`의 클라이맥스 대목에서 높이 솟아오르는 전인권의 노래에 관객은 소름이 돋는다. 전성기 때처럼 높은 음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전인권의 말끔한 `쾌창`을 되돌려 받은 객석은 감격의 `떼창`으로 화답한다. 들국화도, 팬들도 `다시 행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