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되는 경제민주화...재계 코드맞추기 고심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카드를 하나씩 뽑아들기 시작하면서 재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은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로 꼽힌다. 그동안 주요 대기업들은 새 정부 코드에 맞춰 준법경영, 사회공헌, 동반성장 등을 강조해왔다. 경제민주화보다는 창조경제 분위기 조성에서 협력한다는 취지였다.

14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집권초 창조경제에 집중하는 듯했던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을 대거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주 불거진 등기임원 개인별 연봉공개 이슈는 확대일로다. 일부 재벌총수가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편법상속,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방침 강화도 예고됐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징벌, 불공정거래에 대한 손해배상과 국세청의 재계에 대한 대규모 세무조사 가능성도 커졌다.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앞다퉈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는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불공정거래 기업에 대해 피해액 10배 손해배상 등 대기업을 주 타깃으로 하는 법안들이 대거 발의되거나 상임위에 상정되고 있다.

재계는 정권 초 준법경영과 사회공헌·동반성장 등 창조경제 쪽에 맞춰 접점을 마련해왔다.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석달 만에 귀국하며 `새 정부에 작은 보탬이 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LG는 준법경영을 강조한 구본무 회장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두 회사는 사회공헌과 투자와 고용 확대, 중소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강화방안 등도 공개했다.

이밖에 이마트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고, 대기업 계열 4개 홈쇼핑 업체는 중소기업 지원차원의 무료방송 서비스를 가동키로 했다. 대부분 창조경제에 초점을 맞춘 안들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이슈가 확대되면서 재계는 잔뜩 움츠린 상태다.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것이 큰 부담이다.

한 그룹사 임원은 “창조경제에 동참하자는 데는 대기업도 거부감이 적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재계 단속이 강화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대관, 법무팀 등이 바빠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계는 장관 임명과 조직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가 새로운 대기업 관련 정책을 제기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창조경제에 동참의사를 강조하면서도 과도한 규제 강화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경련은 오는 24일 허창수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출범키로 했다. 새 정부와 접점 마련 차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경제학자 설문조사(33인)를 근거로 `한국경제 취약점으로 절반(48.5%)이 정부 기업규제 강화와 경쟁제한 정책을 꼽았다`는 자료 등으로 과도한 기업 때리기에 대한 저항도 시작했다. 일부 대기업은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녹색산업`의 실종 등 정책 일관성 부족에 대한 불만도 제기했다.

재계는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다음달 방미 일정에 맞춰 첫 회동을 갖는 데 주목한다.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그룹사 관계자는 “이 때까지 정부와 재계 간 다양한 정책과 의견 조율이 다각도로 이뤄질 수 있다”며 “재계에 대한 새 정부의 요구와 대기업의 정권 코드 맞추기기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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