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통신기술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중소기업 위주로 운영되면서 통신사가 사실상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에 비해 부담해야 할 기술료가 턱없이 높은데다 대부분 4년 이상 걸리는 장기 과제여서 현업에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통신기술 R&D에 정작 통신사가 빠지면서 현장의 살아있는 기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해 R&D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국가 예산만 낭비한다는 지적이 높다.
8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올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하는 신규 통신 R&D에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가 대부분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비 사업자 선정이 끝난 미래인터넷, 이동통신 R&D 과제 20여개 중 2개에만 통신사가 참여한다. 그나마 주관기관이 아닌 참여기관 자격이다.
아직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은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 사업에도 통신사가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부 관계자는 “컨소시엄 접수가 끝난 상태로 통신사가 주관기관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없다”고 밝혔다.
일부 통신사는 “국가 R&D에는 되도록 참여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꼭 필요한 경우에는 실무진이 책임지는 조건으로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식의 가이드라인 암묵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통신사가 정부 R&D 참여를 꺼리는 것은 한마디로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높은 기술료와 당장 현업에 적용할 수 없는데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통신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R&D 과제가 중소기업 맞춤형이어서 보조를 맞추는 것이 힘든 게 현실”이라며 “기술원이나 연구소 등 자체 R&D 부서를 운영하거나 외부 협력사를 통해 필요한 기술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토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R&D와 현장의 분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술을 확보해도 정작 현장에서는 쓸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실제로 R&D 상용화율은 사실상 극비에 부쳐진 상태다.
미래부는 최근 그동안 통신 R&D 상용화 성과가 신통치 않자 상용화를 위한 사업협의회까지 만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상용화가 안되는 것은 R&D에 참여하지 않은 통신사가 해당 기술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결국 거금을 들인 R&D가 연구실에서 끝나면 국가 예산만 낭비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통신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 로드맵을 제시하고 통신사가 직접 R&D를 제안할 수 있는 길을 대폭 넓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통신 분야 한 교수는 “통신사 같은 대기업은 시장 경쟁구도가 치열해 문호를 개방해도 정보 공개를 꺼려 스스로 참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며 “국가 차원에서 구체발전방향을 수립하고 공개된 수준에서 통신사가 R&D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