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전망대]<2> 한류, 프랑스 문화코드를 관통하다

안수정 가톨릭대 한류대학원 한류지식센터연구위원

(cinemas87@gmail.com)

한국 영화계 올해 이슈는 단연 글로벌화다. 배두나가 출연한 `클라우드 아틀라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가 할리우드에서 제작을 마치고 개봉했다. 450억원을 투자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1986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프랑스의 동명 SF 만화인 `설국열차(Le Transperceneige)`를 원작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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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만화는 예술의 한 장르로 여겨지며 프랑스 전체 출판시장에서 무려 9%를 차지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마니아가 많은 일본 만화(망가)와는 달리 프랑스 만화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다.

반면 프랑스는 한국의 대중문화 특히 K팝을 열정적으로 수용하는 나라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줬다. 북미나 다른 서유럽국가와는 달리 프랑스는 세계 공통어인 영어가 통하지 않는 문화적 자존심이 센 나라, 루이뷔통이나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의 나라, 최고급 요리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대중문화보다는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나라로 인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K팝 그룹의 파리 공연에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믿기 힘들었다. 에펠탑 앞 광장에서 2만여 관중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따라 말춤을 똑같이 추는 광경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아시아로, 다시 북미나 유럽으로 `확장`된다는 가시적 지표에 주로 관심을 둬왔다. 따라서 상호 교류를 통한 국가간 콘텐츠 공동 제작이나 글로벌 시장의 여러 수용 방식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프랑스 입성은 한류가 아시아 이외 국가까지 확산됐다는 의미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프랑스 한류는 우리가 어떻게 글로벌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타문화와 소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다.

영화는 가장 먼저 프랑스인에게 다가갔던 한류 장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2000년을 기점으로 프랑스 주류 영화계와 프랑스 관객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임권택 감독에 이어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 또한 프랑스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들이 구사하는 영화적 스타일이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나 에릭 로메르 같은 작가주의 감독이 지향했던 영화적 스타일을 강하게 연상시키고, 현재 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문법과 뚜렷하게 차별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업영화 상황은 전혀 다르다. 대부분 프랑스 흥행에 실패하거나 인지도가 낮아 프랑스 일반 관객들에게 폭넓게 어필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5년 프랑스의 109개 상영관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했지만 관객이 3만명에도 못 미쳤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 예술 영화도 편당 평균 관객은 4만명을 넘지 못했다. 프랑스 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K팝 열풍과는 대조를 이룬다.

지난 가을 방한한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문화학자인 기 소르망은 최근 십여년간 변화해온 프랑스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에 관한 흥미로운 견해를 보여줬다. 기 소르망은 임권택,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예술과 문화로서 `한국적 보편성`이 K팝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K팝이 세계적인 대중문화 현상의 현지적 표현”이라고 정의하면서 문화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역으로 한류가 일깨운 문화산업의 중요성만큼이나 타문화권 사람과 소통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설국열차`는 혹독한 추위가 닥친 지구에서 유일한 생존처인 설국열차에 몸을 실은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는다. 아마 봉준호 감독은 한국인과 프랑스인을 뛰어넘어 지금 이 시간 지구에 발을 딛는 우리 모두가 체험하는 `보편적` 아픔과 희망을 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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