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칸막이를 걷어라

최근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는 복지담당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실제로 얼마 전 울산 지역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월에는 용인시청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투신했고, 2월에는 성남시청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자살했다. 두 사람 모두 평소 업무과다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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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지자체 복지담당 공무원은 총 2만4888명. 올해와 내년에 3000명 이상을 증원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복지담당 현장 공무원의 과다업무는 쉽게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인력증원 속도보다 정부 복지업무가 눈덩이처럼 늘어났기 때문이다. 계절적으로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는 것도 문제다. 복지 공무원의 자살은 정부가 무작정 인력을 늘려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이번 청와대 업무보고에는 복지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농림부 등 타 부처 국장들도 참석해 토론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시 반드시 부처 간 협업과제를 선정해 어떻게 협조해 나갈 건지 제시하고, 총리실은 부처 간 협업과제를 수시로 점검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토론 결과, 부처 간 협력을 통해 복지업무를 읍·면·동이 아닌 시·군·구가 나눠 처리하면 담당 공무원의 중복업무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왔다.

여성 사회학자 레베카 코스타는 현대문명의 몰락가능성을 얘기하며 사회발전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사일로(Silo)식 사고`를 꼽았다. 사일로는 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 구조물로 조직 장벽과 부처 이기주의를 말한다. 경영학에서는 조직이 커지면서 사업별 책임 경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서별 이기주의를 `사일로 현상(silo effect)`으로 표현한다. 이윤을 독점하려는 부서별 목표 때문에 조직 전체 시너지는 물론 정보 공유조차 어려워지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의미다.

학자들은 사일로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맥도널드(McDonald)를 꼽는다. 맥도널드에는 햄버거, 감자, 음료수 등 3개 사업부가 있다. 그런데 햄버거는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매년 30% 이상 적자다. 반면에 감자는 평균 40%, 음료수는 60% 정도 흑자가 난다. 감자와 콜라를 팔면 이익이지만, 햄버거는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익이 나는 감자와 콜라만 팔고 햄버거는 없는 맥도널드 매장은 없다. 햄버거를 팔지 않는 맥도널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과거엔 개별 조직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울수록 내부경쟁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낸다는 명제가 진실로 인정됐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개별 분야에서 전문성만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서로 다른 기술을 합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융·복합 시대다. 창조 역시 수많은 아이디어를 누가 새롭고 창조적으로 조합하느냐에 달렸다. 조직간 칸막이를 없애고 서로 협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가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든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그러나 정부 조직이 제대로 갖춰지기도 전에 희망하는 업무와 인력을 가져오려는 물밑싸움이 치열했다. 결국 정치권과 정부, 여야 간 대립으로 `협의`란 미명아래 창조경제나 기술융합과는 동떨어진 어정쩡한 업무 분장으로 결론 났다. 이대로라면, 박근혜정부와 미래부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얘기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면 칸막이를 걷어내고 함께 호흡을 맞추며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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