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특허전쟁, 선제적 대응이 살 길이다

산업계의 대표적인 총성 없는 전쟁이 특허분쟁이다. 우리 경제규모가 커지고 기업의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특허전쟁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은 높아졌다. 특히 전자산업은 수시로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제품이 출시되고 짧은 시간 내 시장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특성을 갖는다. 전자산업에서 특허분쟁이 유난히 많은 이유다.

최근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전자IT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업체 380개 중 62% 이상은 향후 글로벌 특허분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허전쟁으로 완제품 인지도 제고 등의 부수효과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글로벌 기업의 한국산부품 구매 감소, 단가인하 요구 등 부정적 영향이 더 큰 게 일반적이다. 전자IT 기업의 35%는 3년 안에 특허분쟁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전 조사에서 전자업계 분쟁경험이 평균 16%인 점을 감안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그럼에도 우리 기업의 대응체계는 초라한 수준이다. 중소기업 가운데 지식재산권 전담인력이 전무한 기업이 40%, 전담부서를 보유한 기업은 25%에 불과할 정도로 대응력이 열악하다. 특허분야에 연간 1000만원도 투자하지 못하는 기업은 62%에 달한다. 기업 대부분이 특허분쟁이 발생하고 나서야 문제 인식을 갖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기술개발 단계부터 특허분쟁가능성을 진단하고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분쟁대응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효율적 대처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에 따른 비용도 선제적 대응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특허분쟁이 일상화되고 있는 산업생태계에 맞는 선제적 대응체계를 갖춰야 할 때다.

기업은 적절한 투자를 통해 전문 인력과 특허권을 확보하고 분쟁 발생 시에는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글로벌 거대기업을 중소기업 혼자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그동안 정부지원이 기술개발, 마케팅, 기술인력양성 등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자 생존의 필수요소로 대두된 특허분쟁예방과 활용 그리고 분쟁발생시 정책적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만 한다.

특허분쟁대응지원을 위한 예산은 정부 R&D 총규모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래서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의 글로벌 전자기업과 특허괴물이라 불리는 전문기업(NPEs)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선제적 특허분쟁대응시스템`을 보다 확고히 구축해 산업계를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분쟁예방과 분쟁 발생 시 대응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문적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제품기획 단계부터 기업이 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분쟁에 민감한 선행 특허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분쟁예측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기존 글로벌특허분쟁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소송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예측하는 시스템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런 분야에 지원이 보다 확대돼야 많은 기업이 혜택을 보게 된다.

전자산업분야 특허분쟁대응은 전문성과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개별기업의 분쟁상황이 대외로 알려지면 투자유치, 상거래 등 기업 활동에 매우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다. 전문성은 물론 기업과의 긴밀한 네트워크와 신뢰가 담보될 수 있는 업종별 산업단체를 중심으로 전문적이고 세심한 지원이 요망된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부처 간 예산 및 사업조정 과정에서 특허분쟁대응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한 정책과 예산 등이 소홀히 다뤄지는 일이 없기를 전자업계와 함께 기대해 본다.

전상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상근부회장 shjeon@gok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