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무한잉크 프린터 "A/S는 어쩌라고…"

프린터 시장이 단순히 본체를 판매하는 시장에서 잉크·토너 등 소모품을 팔아 이익을 얻는 형태로 변하면서 잉크·토너값이 부쩍 올랐다. 소형 흑백 레이저 프린터의 경우 토너를 2~3번 구입하는 비용이면 새로 프린터를 한 대 장만할 수 있을 정도다. 소규모 사무실 등 출력량이 많은 곳이라면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이처럼 프린터 잉크·토너값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무한잉크’다. 잉크 카트리지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지속적으로 잉크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잉크 카트리지를 교체할 필요 없이 잉크가 떨어질 때까지 쓸 수 있고 비교적 가격이 높은 정품 잉크 대신 호환 잉크를 쓰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프린터를 개조해야 하며 유무상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위험이 따르지만 수요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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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에는 아예 처음부터 프린터를 무한잉크용으로 개조해서 판매하는 업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오픈마켓은 물론 소셜커머스에서도 인기가 높다. 이런 상품에 허위·과장광고는 없을까. 그루폰코리아가 판매하는 ‘HP8500A 플러스 복합기’ 상품을 검증해봤다. 이 딜은 HP 잉크젯 복합기와 무한잉크 세트를 22만 9,000원에 판매하며 오는 2013년 3월 7일까지 판매된다(www.groupon.kr/app/channels/gplanning/37942).

◇ 정품인 줄 알았더니…“병행수입이네?” = 지에스에프앤씨가 판매하는 두 제품 중 ‘HP 오피스젯 프로 8500a 플러스 패키지’부터 확인해봤다. 업무용 잉크젯 복합기인 HP 오피스젯 프로 8500a 플러스와 무한 잉크 패키지가 결합된 상품이다. 하지만 상품 페이지에 기재된 인증 번호인 ‘KCC-CMI-FN1-OJ8500A PLUS’로 검색해 보니 인증받은 업체 상호가 ‘한국HP’가 아닌 ‘(주)에프앤비즈’로 나온다. 어떻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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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폰코리아가 판매하는 상품은 병행수입상품이다.

한국HP에 문의해 보니 이 제품은 국내에 판매된 것과 동일한 제품이지만 제품 판매 업체(지에스에프앤씨)가 제3국을 통해 수입해온 병행수입상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HP가 수입해 판매한 제품의 전파인증 번호는 `HPK-SNPRC-1001-01`이지만 현재 단종되어 판매되지 않는 제품이다. 지에스에프앤씨에 문의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병행수입을 거쳐 판매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HP가 아닌 판매업체(지에스에프앤씨)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제품 설명에서는 이런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5,000장 넘으면 수리는 누가? = ‘HP 오피스젯 프로 8000 엔터프라이즈 프린터’는 한국HP가 수입해 판매하는 정품과 무한잉크 패키지를 한데 묶은 상품이다. 하지만 국내 판매 제품이라도 무한잉크를 쓸 경우 ‘제품 개조’에 해당해서 국내에서 정식으로 유통·판매된 제품이라면 문제가 생겼을 경우 수리를 받을 수 없다. 과연 수리가 가능할까. 지에스에프앤씨에 문의해봤다.

지에스에프앤씨 관계자는 “기존 무한잉크는 프린터에 호스를 연결하고 개조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HP에서 무한잉크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은 프린터 본체를 건드리지 않고 카트리지만 교체하기 때문에 무한잉크를 썼는지 안 썼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카트리지만 새로 사서 쓰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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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정식 판매되는 제품이라 해도 무한잉크를 쓰면 보증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한국HP는 “잉크 카트리지만 개조해서 쓰는 무한잉크라도 고장이 발생할 경우 해당 소모품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유무상을 막론하고 어떤 보증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HP 서비스센터 관계자 역시 “프린터에 내장된 데이터를 A/S센터에서 조회하면 출력량이나 교체 주기를 통해 무한잉크를 썼는지 아닌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확인차 지에스에프앤씨에 다시 문의하자 다른 담당자가 전화를 받았다. 이 담당자는 “프린터는 정품이더라도 잉크가 우리(지에스에프앤씨) 제품이다. 장비에 불량이 생기면 한국HP에 의뢰를 해야 하는데 잉크때문에 수리가 거부된다. 현재는 제품 구입 후 5,000장까지는 보증을 한다”고 답했다. 결국 5,000장 이상 출력한 후에 이상이 생기면 프린터 고장에 대해 책임질 곳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내용도 판매 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 병행수입, 불법은 아니지만… = 한국HP 관계자는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병행수입은 법으로 보장된 제도이며 이를 강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대법원도 ‘병행수입 그 자체는 위법성이 없는 정당한 행위’라는 요지의 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99다42322 판결).

보다 낮은 값에 잉크를 쓸 수 있게 해 주는 무한잉크 공급장치 역시 불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HP 뿐만 아니라 많은 프린터·복합기 제조사는 무한잉크 공급장치나 재생 카트리지를 이용하다 제품이 고장날 경우 무한잉크 공급장치나 재생 카트리지를 이용한 개조 때문으로 판단해서 유상·무상 수리가 모두 불가능하다. ‘잉크 카트리지만 리필하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판매자인 지에스에프앤씨는 무한잉크 공급장치를 쓰면서 얻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처럼 무한잉크 공급장치와 정품 프린터를 함께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한국HP는 “현재로서는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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