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랩은 지난 11월 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제조업 분야 1조원에 맞먹는 실적으로 국내 보안은 물론이고 패키지소프트웨어(SW) 업계 사상 첫 기록이다. 또 국내산업 전반의 침체와 SW 시장 저성장 등 여러 악재를 뚫고 이룬 성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
안랩은 날로 고도화하는 보안 위협에 혁신적인 기술과 신제품 개발로 대응하는 한편, 서비스의 사업 집중력을 강화하고 융합을 통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또 글로벌 시장을 향한 적극적인 투자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장을 위한 아낌없는 노력이 낳은 성과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표적 SW기업으로 자리 잡은 안랩은 글로벌 정보보안 시장이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지난 1988년, 안철수 박사가 `백신`이라는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태동했다. 이때부터 쌓은 정보보안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난 1995년 3월 15일 창립했다.
안랩 설립 직후 세계적인 백신업체들이 잇달아 국내 지사를 설립하면서 경쟁 체제가 구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안랩이 정식 출범하기 전부터 안철수 박사가 무료로 보급했던 V3가 사용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에 외산 백신의 도전도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안랩은 설립 초기 변변한 수익모델을 만들지는 못했다. 보안 시장 자체가 초기였던 탓이다. 더욱이 안랩 설립 전 7년간 무료로 보급했던 V3를 유료화하자 고객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IT 인프라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보안 위협이 증가하면서 기업 사용자층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고 안랩은 사업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지난 1997년 중반 모 글로벌 보안업체로부터 받았던 거액의 인수 제의는 안랩 역사에 또 하나의 기점이기도 하다. 당시로선 엄청난 액수인 1000만달러 제의에 안 박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국내 보안 시장을 우리 기업이 지켜야 한다는 소신과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과 계속 함께하겠다는 뜻이다.
1997년 말 불어닥친 IMF 관리 체제로 온 나라가 위축됐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안랩에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빚을 얻어 사업을 확장했던 회사들이 줄도산하고 지사를 철수하는 외국기업이 속출했지만 안랩은 보수적 경영을 해온 덕에 대내외적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도리어 고급 인력들이 안랩으로 이동하면서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효과를 봤다. 게다가 건물임차료가 내려가면서 고정비용도 줄었다.
안랩은 이때 아낀 기업자원을 연구개발(R&D)에 모두 쏟았다. 경기가 회복됐을 때 외국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 결과 1998년 말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터넷과 네트워크 서버용 백신을 개발해 격차를 좁히는 것은 물론이고 외산기업과의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었다.
회사는 내부 조직 구성과 영업 채널 확보에도 박차를 가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CFO와 인사 담당자를 채용하는 한편 고객 접점 확대를 위한 다양한 영업 채널망을 구축하고 채널 지원 정책을 세워 나간 것.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안랩은 지난 1999년 `CIH 바이러스 대란`과 정품 SW 사용 캠페인의 수혜를 받아 전년 대비 4.5배 성장, 국내 보안 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원을 넘는 급성장을 이뤘다.
`안주하면 곧 위기`라는 안철수 박사의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으로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던 지난 2000년 중반, 안랩은 4대 기치를 내걸고 장기적인 생존에 시동을 걸었다. 백신회사에서 보안회사로, 국내기업에서 글로벌기업으로,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으로 장외기업에서 상장기업으로의 변신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구성원 모두를 결속하게 하는 가치관과 시스템을 정립했다. 안랩은 지난 6년간 임원진을 포함한 전 구성원이 행동이나 의사결정의 준거로 삼았던 가치를 워크숍에서 정리하고 회사의 핵심 가치와 존재 이유로 명문화했다.
안랩의 가치는 누구나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치기도 하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자기계발)`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상호존중)`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객만족)`는 3대 핵심 가치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존재 이유가 정리됐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건전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철학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김홍선 대표가 취임한 2008년부터는 스마트폰, 클라우드컴퓨팅, 소셜네트워크 등 IT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전개하고 있다. 안랩은 기존 보안SW의 원천기술을 혁신하고, 지능형 타깃 공격(APT) 방어, 생산라인 보안, 모바일 보안, 온라인 금융 보안, 망분리 등 신개념 솔루션을 개발해 시장을 창출했다.
아울러 국가적 재난 수준의 사이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랩은 민간기업으로 보기 드물게 피해를 줄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지난 2011년 3.4 디도스 공격, 2009년 7.7 디도스 공격 등에서 전 직원이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 사고의 원인이 된 악성코드를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신속히 제공했다. 대국민 경고 메시지와 전용 백신을 무료 제공하는 등 신속한 대응에 솔선수범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하지 않았다.
안랩 매출 추이 (단위:백만원)
(자료: 안랩)
정미나기자 min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