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정보화, 대통령 리더십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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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정보화자문을 위해 타슈켄트에 온 지 3개월째. 오늘의 이 나라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25년 전을 생각한다.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걸고 달음질을 시작하던 때였고, 그 슬로건대로 오늘 우리는 정보화 선진국, 특히 전자정부는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정보`라는 단어가 특정 기관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전산망 사업이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시절, 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을 우리의 생명선으로 간주하는 대담한 시도를 했고 그것이 성공해 오늘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우리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기 위한 노력이 정부의 중요한 정책으로 채택돼 여러 방향에서 활발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개발도상국의 하나가 우즈베키스탄이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다섯 나라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동서양 문물 교류의 가교였던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이 지금 우리나라 정보화 경험을 전수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너무 다른 나라이기에 직접 비교는 어려우나 정보화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지만큼은 25년 전 우리와 흡사하다. 정보화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 나라 대통령이 성공한 한국의 전자정부를 그대로 베껴 오라는 지시를 했다고 할 정도다. 정보화 추진 전담 정부조직의 위상이 대통령 훈령 하나로 하룻밤 사이에 한 단계 격상되고 조직의 규모가 두 배로 확대되는 등 강한 리더십을 즐기고 있다. 내년 3월까지 정보화 기본계획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총리 훈령은 한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톱다운 방식의 정보화 정책을 성공시킬 조건을 얼마나 갖추었는지다. 25년 전 우리나라 정책 전문가들은 망 구축과 기술 개발 등 인프라가 덜 갖추어진 환경에서도 정보화 인식 확산과 컴퓨터 교육을 더 중요한 성공 조건으로 꼽았었다. 톱다운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수요를 창출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즈베키스탄에 이런 정책 의도가 있는가.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은 초보적인 정부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이것으로 전자정부의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웹사이트 이용자 수를 물어보면 그런 질문은 처음이라는 듯이 반응한다. 더구나 정부 정보를 공개해 투명하고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 전자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임을 깨닫고 피부로 느낄 때, 이 나라 리더십이 전자정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은 폐쇄적인 이 나라의 사정이 25년 전 우리와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첫 번째 정보화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던 시기가 운 좋게도 민주화 과정과 함께했고, 조금 후 인터넷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IT의 특성인 공개와 투명성을 학습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을 거쳐 정보화가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거친 이 과정을 우즈베키스탄에 그대로 이식할 수 있을까. 신중한 답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공개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이 전자정부의 핵심 기술인데 정부의 모든 것을 공개할 준비가 됐는가. 아직 덜 갖춰진 통신망과 정보시스템, 컴퓨터 보급, 컴퓨터 이용 능력 등 정보화 인프라는 우리의 지원과 자문으로 보완할 수 있지만, 정부를 오픈하고 그 안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장치는 정보화 이전의 문제다.

이 나라 리더십이 공개와 개방 그리고 책임성 확보라는 정보화의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까지 정보화 정책 자문활동에 포함될까. 정보화의 속성을 이해하게 하는 것은 정책자문의 대상이겠지만, 이를 받아들여 민주적인 절차를 갖추는 것은 그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 의지는 한국의 전자정부를 그대로 베끼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정국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선임연구위원 khjeong@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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