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누리꾼 관심을 끌었던 사진 한 장이 있다. 이름은 `간 큰 가젤`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톰슨가젤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케냐 마사이마라국립보호구를 흐르는 마라강 횡단을 시도한다. 하지만 대부분 나일악어 먹잇감이 되고 만다. 이 사진 속 작은 가젤 한 마리는 입을 벌리고 있는 악어 머리 위로 높이 점프해 위기를 모면한다.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작가는 당시 엄청난 몸집의 악어가 다수 포진해 작은 새끼 가젤이 그 틈을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하고 대담한 이 작은 가젤은 역경을 헤치고 결국 살아남았다.
우리 경제계에도 `간 큰 가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젤형 기업은 매출 혹은 고용자 수가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고성장하는 기업이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이 얼마나 될까.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1998년 벤처 확인제 시행 이후 1회 이상 벤처확인을 받은 기업 5만3000여개 가운데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한 곳은 381개에 불과하다. 성공률이 1%도 되지 않는다. 아마 톰슨가젤이 강을 건너 살아남을 확률보다 더 낮을 것이다.
많은 중소 벤처기업이 소액 자금으로 창업해 기술을 개발해도 상용화 단계에서 생산과 마케팅에 쓸 자금을 구하지 못해 사라진다. 독창적인 기술 개발로 어렵게 살아남은 벤처기업도 애써 키운 인재를 대기업에 빼앗기고 기술을 탈취당하며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다.
벤처기업 특구로 잘 알려진 대전지역 기업과 종사자 수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2010년 이후에는 3.1%와 1.4%에 머무는 저성장세로 돌아섰다. 현장에서는 성장률 감소와 벤처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 지원과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예산 증가율은 2008년 이후 감소 추세다. 예산 대상별 지원 비중을 보면 중소기업 지원은 12%에 불과하다. 예산도 연구소, 대학에 집중돼 있다. 상용화 기술을 구현해 성장에 기여할 중소기업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은 2010년부터 고성장기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저성장 탈출 방안을 모색해왔다. 핀란드는 기업당 컨설턴트 한 명을 배치하는 프로그램을, 영국과 호주는 기술 전문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제 우리도 고품질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성장기업 지원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중소 벤처기업을 위한 R&D 예산과 연구개발비 세제 혜택도 늘릴 필요가 있다. 핀란드 등 주요 선진국의 지원제도를 벤치마킹해 복잡한 자금 지원 절차로 도움을 받지 못한 업체가 없도록 컨설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고급인력이 내 회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장기 근속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재형저축과 같은 중소기업 직원 대상 세제 혜택이나 기술 개발 보상, 복지개선 등의 방법을 마련한다면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인력 빼앗기 문제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 불안이 실물로 전이된 경기 불황으로 내년에도 우리나라 성장률은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국민적 경제 민주화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제 차기 정부 앞에는 경제 민주화와 성장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숙제가 놓여 있다. 나는 가젤형 기업 육성이 현 경제 상황의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 심화, 저성장, 실업이라는 고민의 근본적 해결책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기 정부에는 중소 벤처기업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마련과 적극적인 추진으로 더 많은 `간 큰 가젤`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성낙중 기협기술금융대부 대표 njs@kbiz.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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