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달빛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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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정조는 `달빛왕`으로 불린다. 어느 날 대신들과 밤늦게 국정을 논하다 창문을 열고 신하를 가르친 일화는 유명하다. 대궐 밖을 환하게 비추는 달을 가리키며 그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달이라면 그 달빛이 비추는 만물은 곧 백성이다. 하늘이 주신 선한 본성을 회복하고, 백성들 개개의 성품과 기질에 따라 천명이 올바로 발휘하게 이끌려면 군주가 먼저 치열하게 수신하여 자신의 빛을 찬연히 밝혀야 한다.”

그는 달빛을 가리는 구름, 즉 간특한 신하와 당쟁을 없애려고 했다. 달빛이 수만 개의 시냇물을 비추듯 백성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왕릉을 방문하며 백성을 직접 만나는 능행(陵幸)도 수시로 강행했다. 24년 재위 기간 동안 무려 64회나 능행에 나섰다. 1년에 세 번꼴로 도성 밖에서 민의를 수렴했다. 다른 국왕이 2년에 한 번 정도 도성 밖으로 나갔던 것과 비교됐다.

백성과 직접 소통은 개혁 정치를 불러왔다. 대신들의 반발에도 백성 편에서 금난전권을 혁파한 것이 대표적이다. 육의전과 시전 상인이 독점한 상권을 백성에게 개방하면서 부패가 줄고 경제가 살아났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를 이뤄냈다.

대선 정국이 뜨겁다. 여야 가리지 않고 `인적 쇄신론`으로 홍역을 앓는다. 먹구름에 달빛이 가리듯 후보와 백성 사이의 `가신(家臣)`이 문제라는 것이다. 공교롭게 정조 집권 초반과 지금의 정치 현실은 닮았다. 조선 후기 당리당략만 앞세운 극심한 당쟁으로 민심은 국정에서 소외됐다. 지난 5년간 여야의 극한 대치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럼에도 빅3 후보 캠프에 많은 폴리페서(정치교수)가 구름처럼 몰린다. 5년마다 돌아오는 `정치 한탕주의`를 재연한다. 달빛을 가리는 불운의 정치가 반복될 조짐이다. 우려는 후보들의 현실성 낮은 공약에서 감지된다.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복지 등 그림만 그럴싸하다. 후보가 연일 국민들을 만나지만 각본에 짜인 형식적인 간담회에 그친다.

최근 전자신문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일선에서 뛰는 기술 중소기업 경영진과 직원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기 정부는 산업 육성책도 좋지만 대정부 창구를 단일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일 많았다. 지난 5년간 지경부·방통위·문화부·행안부로 뛰어다녀도 민원이 해결되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다는 하소연이다. 민의는 거창한 공약보다 조그만 불편부터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젠 능행 같은 의식이 아니더라도 트위터,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빛의 속도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 켜켜이 가린 가신과 관료의 구름을 걷어내고 국민과 얼굴을 마주보는 `달빛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