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길 잃은 저축은행 통합전산망

어렵사리 합의를 도출한 저축은행 통합전산망 구축이 다시 요원해졌다. 저축은행중앙회장 인선이 난항을 거듭하면서다. 회장추천위원회는 지난 17일 회의를 열고 `적합한 후보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후보를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달 23일 임기가 끝난 주용식 전 회장의 후임 인선을 위해 지금까지 두 차례 공모를 진행했다. 1차 공모에선 지원자가 없었다. 이번 2차 공모 역시 후보 등록이 예상됐던 김교식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돌연 지원 의사를 접어 무산됐다. 저축은행중앙회는 다음 달 임시총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3차 공모 여부를 정한다. 김성화 부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을 하지만 상당 기간 파행 운영은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지난달 산고 끝에 합의했던 93개 전체 저축은행 전산망 통합은 물 건너가는 양상이다. 저축은행중앙회 전산망에 가입한 저축은행은 총 63개. 나머지 30개 저축은행은 대부분 중·대형이다. 이들 은행은 `이미 비싼 돈 들여 자체 전산망을 보유·운영한다`는 이유로 지금껏 중앙회 전산망 편입을 꺼렸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개별 저축은행의 전산 계좌 조작을 원천 봉쇄해 불법 대출 등을 예방한다는 것을 공동망 이용 명분으로 내세웠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3차에 걸쳐 퇴출된 저축은행 20개 가운데 부산저축은행 등 대규모 불법 대출 등이 적발된 15개 저축은행은 모두 자체 전산망을 운영해왔다. 자가망이 저축은행 부실의 인프라 역할을 해온 셈이다.

한발 물러선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전산망 가입 방식을 완전 가입 형태와 계정만 통합하는 형태 중 택일하도록 유도했다. 올 연말께면 그나마 결실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통합 작업의 구심점이 돼야 할 저축은행중앙회장의 공석으로 사실상 연말 완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차피 무리하게 추진했던 것인 만큼 이번에 잘하면 통합 작업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겠다`는 게 대형 저축은행들의 속내다.

금감원 역시 “전산망 통합이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고 권고했는데 듣지 않으면 우리도 어쩔수 없다”고 발을 뺀다.

언제나 금융기관 앞에서는 무소불위인 금감원치곤 초라하다. 하지 못하는 것인가, 안하는 것인가.


류경동 경제금융부 nina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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