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막을 따로 제작하면 수지가 안 맞을 정도다.” 칼레 라이타 드로 엘리먼츠 최고경영자(CEO)가 핀란드의 작은 경제규모를 설명할 때 서글픔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곧 “그래서 무조건 해외로 진출한다”고 말했을 때 핀란드 스타트업이 글로벌 본능을 가진 이유를 깨달았다.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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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 수 없는 글로벌 본능
핀란드는 인구 500만명 정도의 작은 나라다. 지리적으로도 북유럽에 위치해 제대로 된 시장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핀란드 GDP의 66%를 차지하는 서비스 산업을 빼면 대부분 수출로 돈을 벌어들인다. 노키아도 해외 매출 비율이 99%에 달했다. 사람 말고는 자원이 없다는 점은 우리와 판박이다. 수도 헬싱키에서 만난 모든 스타트업 관계자가 “핀란드는 작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핀란드는 크기가 작고 내수도 작다”부터 “실리콘밸리에 비해 절대적 자원이 부족하다”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어렵다” 등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콤플렉스가 핀란드 스타트업을 해외로 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요나스 헬트 블라스트(Blaast) 최고경영자(CEO)는 “사업 시작 첫날부터 글로벌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핀란드 스타트업의 절박한 심정을 표현했다. 미코 하이파이넨 오블린 CEO는 “이스라엘은 제품 개발만 이스라엘에서 하고 홍보는 미국에서 한다”면서 “우리도 이런 모델을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어를 잘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핀란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교육 수준이 높은 덕에 일반인도 영어를 잘 한다. 현지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버스 운전사조차 영어를 포함해 5개 국어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직접 만난 본 블라스트, 드로 엘리먼츠, 오블린 세 스타트업 모두 사업 시작부터 모든 과정을 영어로 진행해 자연스럽게 해외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글로벌 진출은 비단 판매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행사에 참석해 투자를 유치하는 사례도 있다. 오블린은 영국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로부터 150만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앵그리버드로 상징되는 글로벌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핀란드는 글로벌 진출에 더욱 자신감을 갖고 있다. “로비오가 노키아를 이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로비오는 노키아 휴대폰용 모바일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다. 앵그리버드를 개발하는 로비오의 사라 안틸라 홍보담당 이사는 “기업이나 미디어, 학교 등 전세계에서 회사 인터뷰나 방문 요청을 해온다”면서 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그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타트업 인재 양성
핀란드는 알토대학교 등에서 체계적으로 글로벌 스타트업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알토대는 알토AVP라고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석사 과정인 이 프로그램은 알토대 과학·전자·컴퓨터공학은 물론 영어화 화학과 교수까지 참여해 수업 커리큘럼을 짠다. 마리스퀘어나 이카 파나넨과 같이 핀란드 출신 세계적 기업가들이 `글로벌 DNA`를 전수한다. 이카 파나넨의 경우 알토대를 졸업하고 슈퍼셀이라는 게임 개발업체를 차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스타트업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포드 대학과 협력협정을 맺기도 했다. 핀란드 학생들이 스탠퍼드를 방문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를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스티브 블랭크 등 유명 스탠퍼드 교수들이 핀란드에서 글로벌 스타트업 문화를 전파하기도 한다. 알토대는 우선 2013년까지 3년 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유카 하이리넨 테케스 이사는 “글로벌 회사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경험을 전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면서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은 한국에만 머물지 말고 외국에 적극 나갈 것”을 주문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