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집2-스타트업]핀란드 "노키아는 잊어라"

“노키아는 작은 연못의 큰 오리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월 3일 핀란드 한 증권사 회장의 말을 빌려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것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시간 차이는 있지만 비즈니스위크와 가디언 등 글로벌 언론이 비슷한 기사를 실었다. 외신으로 본 핀란드는 노키아의 나라였고, 노키아가 추락하면서 핀란드 전체도 고통을 받는 것처럼 묘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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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가 마땅치 않아 그래프를 사진 찍어 올립니다.=제목은 <테케스 R&D 펀딩 산업별 비교>=가로는 연도=세로는 금액. 위로부터 7000만유로, 6000만유로...=색깔별 설명은 맨 위로부터-전자 및 전기공학 산업-기계 금속 산업-화학 산업-임업-식품산업-건설산업=자료 출처는 테케스입니다

◇“노키아는 잊어라”…스타트업 자신감

틀린 말은 아니었다. 2009년 노키아는 핀란드 수출의 14%를 차지했다. 그런 노키아가 무너지고 있으니 외부에서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간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말 방문한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외신에서 듣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야기를 나눠본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구동성으로 “노키아는 큰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마르쿠 마울라 알토대 경영학과 교수는 “핀란드는 산업이 다원화돼 노키아가 국가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2002년쯤 노키아가 핀란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으나 지금은 엘리베이터기업 코네(Kone)나 에너지기업 포텀(Fortum) 등에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노키아가 핀란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노키아 빈자리를 스타트업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칼레 라이타 드로엘리먼츠(Draw Elements) 최고경영자(CEO)는 “단기적으로 노키아 위기가 세금이나 일자리 등을 줄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장기적으로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나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지원기관 테케스(Tekes)의 유카 하이리넨 이사는 “노키아에서 많은 실업자가 발생한다고 해도 창업을 하면 문제가 없다”면서 “노키아 직원의 스타트업 창업을 전문적으로 돕는 `이노베이션 밀`이라는 프로그램을 정부 주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나스 헬트 블라스트(Blaast) CEO 역시 “노키아에서는 좋은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다”면서 “이들의 능력이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강력한 정부 주도형 육성정책 가동

핀란드는 강력한 정부 주도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펴고 있다. 1984년 설립된 테케스(Tekes)라는 공기업이 스타트업 육성을 전담한다. 지난해 테케스가 스타트업에 지원한 금액만 무려 6억1000만유로(약 8500억원)다. 1928개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았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규모다. 영국 스타트업 지원기관 TCIO 1년 예산이 210만파운드(37억원)인 것과도 크게 비교된다. 그만큼 스타트업 육성에 핀란드 전체가 사활을 걸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테케스는 매우 치밀한 계획으로 모든 면에서 빈틈없이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20개가 넘는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실상 모든 스타트업이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지원금액의 58%가 중소규모 업체에 갔을 정도로 이제 막 시작하는 기업을 적극 지원한다. 유카 하이리넨 이사는 “적절한 도움이 없어 사장되는 기업을 찾아내 지원함으로써 빈틈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에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지만 평가는 엄격하다. 지난해 펀딩을 받으러 온 기업 3100개 가운데 1300개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만큼 창업 아이디어를 보는 시장성 평가가 철저하다는 뜻이다. 투자를 받은 뒤에도 정해진 기한 내에 평가단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최대 75만달러를 투자받을 수 있는 `젊은 혁신기업 펀드`의 경우 지금까지 최종 단계를 졸업한 기업이 22개에 불과하다. 유카 하이리넨 이사는 “엄격한 측정으로 도덕적 해이를 막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 “적극 해외 진출하라”

핀란드에서는 IT강국인 한국에 관심이 높았다. 칼레 라이타 드로엘리먼츠 CEO는 “한국은 흥미로운 시장”이라면서 “IT 분야에서 잘나가는 제조사가 많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리딩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어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스타트업에 조언도 잊지 않았다. 유카 하이리넨 이사는 “한국은 스타트업 지원체계가 너무 분산돼 있다”면서 “컨트롤타워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은 한국에만 머물지 말고 외국으로 적극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미코 카이파이넨 오블린(Ovelin) 공동창업자(COO)는 “한국 업체도 해외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할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비전이 있다면 미국으로 본사를 옮긴다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쿠 마울라 알토대 교수는 “기업가정신은 대기업을 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적극적으로 도전을 해야 한다. 실패를 해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국 청년들이 젊었을 때 창업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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