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실명제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사라졌지만 신분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각종 규제는 여전히 남았다. 공직선거법과 청소년보호법, 게임산업진흥법 등 이용자 신상 등록을 요구하는 각종 규제가 장본인이다.
인터넷에서 시시때때로 자기 신분증을 보여야 하는 `온라인 불심검문`이 계속되는 셈이다. 위헌 소지는 물론이고 네티즌 불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선거 기간 중 인터넷 언론 게시판에 댓글을 달 때 실명 확인을 거치도록 한 공직선거법 82조 6항이 대표적이다. 일반 게시판에 글을 쓸 때 본인 확인은 필요 없지만, 선거 기간이 되면 다시 본인 확인을 받아야 한다. 4월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소셜 댓글`도 실명 인증 대상이라고 밝혔다.
해외 SNS를 통한 의사 표현엔 제약이 없다. SNS 선거 운동을 제한한 공직선거법 규정도 작년 한정 위헌 판정을 받았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에는 족쇄를 채우며 사용자를 해외 서비스로 보내는 꼴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재 판결을 계기로 공직선거법 실명제 조항의 재검토 계획을 밝혔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 접근을 위한 본인 확인을 강화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도 다음 달 시행된다. 공인인증서나 아이핀 등으로 실제 연령까지 확인해야 해 실질적인 `완전 실명제`라는 지적이다. 청소년의 심야 시간 온라인 게임 이용 금지, 이른바 셧다운제를 담은 청소년보호법과 게임산업진흥법도 사용자에 연령 정보를 요구한다. 실질적 본인 확인이다.
최민식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인터넷 댓글 하나에 대한 제약이 풀렸을 뿐, 본인 확인 규제는 인터넷 전반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터넷 규제가 인터넷실명제 위헌 판결로 영향을 받을지도 주목된다. 여성가족부는 “헌재가 글 쓸 때 본인 확인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 게임을 하기 위한 본인 인증 절차는 무관하다”는 시각이다.
헌재가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강조했고 입법 목적과 법의 실효성 사이 균형, 해외 서비스와의 경쟁 상황 등을 따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실효성 없는 규제를 밀어붙이기 힘들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태언 행복마루 변호사는 “게임 셧다운 등 다른 인터넷 규제 법안의 입법 목적과 표현의 자유 등 이로 인해 제한되는 가치의 균형을 따지는 것이 핵심”이라며 “가정이나 개인의 책임을 국가나 기업에 지우는 과잉 규제는 문제”라고 말했다.
권헌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은 다른 인터넷 규제 법 판단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2002년 전기통신사업법 불온 통신 조항 위헌 판결에서 이번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까지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방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