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통신비 반값 공약이 공허한 이유

체감이라는 것은 보통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나 할까. 상당 부분 자기방어적이다. 실제보다 과도하게 느끼는 때가 많은 이유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체감 경기, 체감 물가, 체감 온도, 체감 시간 등은 모두 이성적이기보다는 감각적인 용어에 가깝다.

통신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어느 한 조사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신비가 배 이상 올랐다고 느낀다는 설문결과가 나왔다. 정말 그럴까. 청구서 기준으로 요금 통계는 2%가량 올랐다는 게 실제 조사 결과다. 체감 통신비와 실제 통신비에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요금제 자체가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자도 36%에 달했다. 통계청의 지난주 통신비 관련 발표는 이 같은 불만을 증폭시켰다. 지난 2분기 가구당 통신비는 작년 2분기보다 평균 9.3%가량 증가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자. 우리가 얘기하는 통신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통적인 개념에서 통신은 음성통화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음성통화의 대체 수단이 등장했다. 편지도 모바일로 하고, 대화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하는 사례가 늘었다. 말 그대로 `손안의 시대`가 도래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홈쇼핑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시청하고 주식도 거래한다. 지불결제뿐만 아니라 업무결재도 스마트폰의 몫이다. 하루 일정 관리도 스마트폰으로 하게 됐다. 내비게이션도 카메라도 e북도 손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사고의 관성적 틀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일까. 스마트폰은 통신보다 데이터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종합 단말기인데도 여전히 통신기기로 정의된다. PC만큼 파워풀한 종합 단말기의 구매비용도 통신비 범주로 잡힌다.

스마트폰이 여전히 음성폰인 사람에게 체감 통신비는 더욱 비쌀 수밖에 없다. 따져보면 음성통화는 큰 차이 없다. 문화비, 교육비, 일정관리비, 텔레매틱스비, 시청료, 영화관람료가 오히려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형국이다. 통신비 불만은 상당수가 음성통화 이외의 다른 모든 혜택을 애써 간과한 데 따른 것이라는 업계의 주장도 이해할 만하다.

정치권이 지나칠 리 없다. 체감도가 높은 통신비는 표심을 자극할 전략적 카드로 적당하다. 반값 통신비 경쟁이 벌어진 배경이다. 단순한 수도료·전기요금과 부가서비스가 다양한 통신비가 다른데도 그렇다. 체감도를 의식하다 보니 더 획기적이고 과감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은 당장 음성통화요금 20% 인하안을 내놨다. MB가 공약한 안까지 승계받는다고 하면 50% 가까이 인하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롱텀에벌루션(LTE) 서비스에도 무제한 데이터요금제를 적용하겠다고도 했다. 야당은 아예 기본료와 가입비, 문자메시지 등의 요금을 폐지하는 안을 내놨다.

과연 이 같은 공약이 가능할까. 정치권이 주장한 대로 기본요금 등을 폐지하면 10조원 가까운 매출이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통신 3사의 매출은 정체된 반면에 설비투자는 2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3사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나 줄었다.

통신비 인하를 반기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통신비가 표심을 자극하는 수단으로만 유효한 것이라면 문제다. 통신은 전후방 산업이 복잡하게 얽힌 산업이다. 생태계 구축이 비교적 자기완결적 구조로 이뤄지는 몇 안 되는 산업군임도 부인할 수 없다. 성장산업으로서의 활로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통신비 반값 인하 주장은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체감 통신비를 근간으로 한 공약 자체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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