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사라졌다. 아파트 현관 앞에 세워뒀는데 감쪽같이 없어졌다. 지난 주말 동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 후 이삼일 사이에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경비실에 물어봐도 자전거 행방이 묘연하다.
“폐쇄회로(CC)TV 한번 검색해보시는 게 어때요?”
경비원이 의외의 제안을 했다. 자전거를 훔쳐간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보다는 호기심에 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아파트 주변에 예상보다 많은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이삼일 전 과거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분 정도. 관리사무소가 건네준 CCTV 파일에는 하루 24시간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겼다. 늦은 시간 아파트 현관에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취객,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난치는 아이들, 치킨 배달원, 세탁소 직원 등…. 무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카메라는 자동으로 돌아간다. 한순간도 예외는 없다. 그 누구도 커다란 자전거를 훔쳐 아파트를 몰래 빠져나갈 순 없다.
제주 올레길 관광객 피살 사건이 터지자 전국 자치단체가 주변 자연산책로에 CCTV를 도입하기로 했다. 외진 곳이나 마을과 동떨어진 길, 숲이 우거진 지점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주민 합의를 거쳐 보행자 안전에 꼭 필요한 장소에만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방침이지만, 자연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조용한 숲속에 CCTV를 설치하는 순간, 호젓한 길에서 명상과 휴식을 즐기려는 탐방객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제주 올레길은 왠지 `자연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이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닮아간다. 건물 안팎과 교통 표지판, 심지어 화장실 안쪽까지 도처에 이런저런 이유로 카메라가 깔렸다. 스크린과 도청시설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빅 브러더(Big Brother)의 흔적도 곳곳에 존재한다. 실제로 도둑의 침입에 대비해 보안 카메라를 설치한 뒤 실질적으로는 종업원 관리에 사용한 외국 사례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주택, 상가, 지하보도, 대학, 도로, 시장 등에 설치된 CCTV는 하루 평균 83회 정도 시민을 감시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24시간 카메라는 돌아간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지켜보는 세상을 살고 있다. 동네 CCTV는 물론이고 인공위성에서 자동차 블랙박스까지 온통 카메라 투성이다. 특히 휴대폰으로 `1인 1카메라` 시대가 오면서 언제라도 찍힐 각오를 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11년 기준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등 국내 공공기관이 설치한 CCTV만 36만대에 이른다. 대기업, 자영업자, 개인 등 민간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CCTV도 250만대를 훌쩍 넘었다. 수백만대의 감시 카메라 앞에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카메라 저편의 세상을 눈치채기 전까지 평범한 생활을 즐겼다. 주인공 눈에 카메라가 보이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어차피 찍혀야 할 운명이라면 모르는 편이 차라리 낫다. 마크 와이저(Mark Weiser)는 “가장 성숙한 기술은 사라지는 기술(disappearing technology)”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져 원하는 일을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진정한 기술적 가치라는 의미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자유시장 경제를 움직이듯, 디지털 세상을 묵묵히 지켜줄 `보이지 않는 눈(invisible eye)`은 정말 없는 것일까.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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