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층 건물 높이와 비슷한 금속탑. 마치 조형물 같이 기이한 형태에 알록달록한 색상이 덧칠해져 SF영화에 소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한 무리의 연구원들은 컴퓨터 모니터가 뚤어질 정도로 쳐다보고 있고, 몇몇 연구원들은 금속탑 주변 기기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최병훈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전자파연구소장은 “이곳은 고전압 케이블이 번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한 연구동”이라며 “금속탑에서 번개와 맞먹는 전류가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KTR은 국내 최초로 고전압 및 특수 케이블을 시험·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고전압 케이블 인증을 받기 위해 해외 기관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 왔다. KTR은 이번 시험연구 시스템 구축을 계기로 국내 업계가 기술력 및 제품 신뢰성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파연구소 부지 내 설립된 시험연구동은 건평 2343.18㎡ 규모로 총 70억원 가량이 투입됐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이 21억원을 지원했고, 50억원 정도의 자금을 KTR이 투자했다.
2층으로 지어진 시험연구동은 조정실을 중심으로 △고전압 시험실 △가속열화 시험실 △부분방전 시험실 △내화 시험실 △물성 시험실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현장에서 만난 최기보 신뢰성평가팀 대리는 “케이블은 산업의 동맥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하지만, 국내 시험인증 기관은 저전압과 일부 초고압 케이블만 평가·인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차세대 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특수 케이블 시험·인증 기술 확보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출해 해외 기관으로부터 인증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업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험평가 및 인증 비용은 연 180억원이며, 이 중 92억원이 해외 인증기관에 지불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도 문제다. 해외 케이블 인증을 취득하는데 3~6개월 시간이 소요돼 중소기업들이 적기에 대응하기 어렵다. KTR이 구축한 특수 케이블 시험동을 이용하면 취득기간은 1개월 이내로 단축된다. 해외 기관에 시험을 의뢰하다 기술이 유출되는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KTR은 일본 전기제품안전(PSE) 등 해외인증 취득도 지원할 계획이다. 방재시험 분야와 시너지효과도 극대화한다. 향후 케이블시험과 방재시험을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한다.
조기성 KTR 원장은 “이번 고전압 케이블 시험동 건립을 시작으로 KTR이 종합 시험평가 및 인증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국내 산업 기술경쟁력 강화와 케이블 산업 성장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