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장비 업계에 `삼성아 고맙다`는 말이 있다.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삼성 덕분에 경쟁력을 키워서 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이 있다. 삼성이 부품이나 장비를 대량 구매해줘서가 아니다. 삼성이 거래를 끊어줬기 때문이다. 삼성과 거래를 끊는다는 것은 든든한 고객을 잃는다는 이야기다. 한순간에 큰 고객사를 잃으면 기업은 휘청거린다. 자칫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 삼성이라는 큰 고객사가 있다고 해서 놀고먹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객사가 있고 없음의 차이는 크다. 삼성과 거래가 끊기고도 업계를 주도하는 기업은 대부분 `죽음의 계곡`을 슬기롭게 잘 넘겼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고객 다변화에 성공했다.
정부가 변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원하는 방법이 진화하는 중이다. 예산 항목에서 산업 진흥이라는 명분의 퍼주기식 정책자금을 최소화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래 끊임없이 제기된 정보통신부 부활론도 어쩌면 줄어든 예산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과거 정통부와 산업자원부가 e비즈니스나 전자상거래 등 각종 정보화 사업을 전개할 때 책정한 예산만 봐도 그렇다. 기업에 지원하는 예산규모가 달랐다. 유사한 사업이라도 정통부 쪽 과제를 수주하면 예산액에 동그라미(0) 한두 개는 더 붙었다. 한동안 `머리는 산자부 쪽 사업으로 가고 싶지만 몸은 이미 정통부 쪽에 가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사업 당위성을 보면 산자부 쪽인데 예산을 보면 정통부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는 구조였다.
얼마 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가 전국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느낀 점이라면서 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농촌에 갔더니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농수산물 유통채널과 판로 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체험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사업을 찾아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고 한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섰다는 것이다.
기업 활동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정통부가 부활한다고 해도 정부는 예전처럼 퍼주기식 정책은 펴지 않는다. 하늘만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게 아니다. 정부도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 정부는 이제 물고기를 사서 주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고기 잡는 법이나 기르는 법을 지원할 것이다. 당장은 많이 힘들 것이다. 때 되면 정부 시범사업이니 뭐니 해서 쏟아져 나오는 예산을 기다리던 기업은 당장 어려워진다. 문 닫는 기업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글로벌 무대에서 마주 서야 한다. 지금 우리 기업에 필요한 것은 정부가 가꿔온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려는 용기와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