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 의학인 `한의학`이 중국 중의학에 밀린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집니다.” 한의학 국제 표준화를 주도해온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장(55). 최 원장은 “국내 유일의 한의학 R&D 기관인 한의학연구원 역량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일부 정상을 넘보는 수준”이라며 “국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지역 전통의학 자문관으로 일하며 전통의학의 표준화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인물. 국내 한의학계에서 나름 고군분투하며 독보적인 리더십을 쌓아왔다. 지난해 전통의학 표준화 기구인 `ISO TC-249`(국제표준기구 전통의학기술위원회) 명칭이 `전통중의학`으로 흘러가는 걸 `몸으로` 막아 세계 전통의학계에서 한국 위상을 확보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우리나라 IT와 과학기술 위상에 비해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위축된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5월 대전서 열린 제3차 `ISO TC-249`에서 국제표준 24건이 통과됐는데 우리나라가 7건, 중국이 8건 채택됐습니다. 진단기기(전침기, 설진기, 맥진기)와 뜸, 약탕기 등 5건을 한의학연이 제안했습니다.”
정부는 2015년까지 1조원가량을 투입하는 `2차 한의학육성계획`을 내놓고 예산을 집행하지만, 한의학연구원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일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했다고 토를 달지만, 한의학연구원의 연간 예산은 500억원가량이다. 예산 규모는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13개 출연연구기관 가운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국가수리과학연구소를 제외하면 가장 적다.
중국은 지난 2009년에만 47억위안(한화 약 7700억원)을 중의학에 투자했다. 일본은 한방제제 생산기업인 즈무라 제약 매출만 2009년 기준 1조2000억원에 이를 만큼 시장규모도 엄청나다. “한의학 R&D는 아직 뚜렷한 모델이 없습니다. 우리가 개척한데로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이 1980년대부터 발 빠르게 표준화를 준비한데 반해 우리는 민간 차원의 대응뿐이었던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최 원장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 5월 문을 연 것이 바로 `한의기술표준센터`다. 근거중심의학(EBM) 기반으로 한의기술 품질과 안전성, 신뢰성, 효과성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연구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한의학의 과학화와 한약재 규격, 한방의료기기 관련한 표준화 등을 추진한다.
최 원장은 “국민 정서상 한약과 친근하지만 과학적으로 약 성분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약효나 치료효과가 나타나게 되는지 등에 관한 규명이 소홀했다”며 “오는 2050년 5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세계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한의학의 과학화와 표준화가 절실한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최 원장은 최근 신동의보감 편찬사업에도 착수했다. 오는 2017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한의학의 근간인 허준의 동의보감을 400년 만에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엄청난 일이다. 동의보감은 1613년 발간돼 지금까지 한의학 대표 교과서로 쓰여 왔다. “얼마 전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의대교수와 학생, 재미한인 바이오분야 과학기술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의학과 중의학의 차이 등에 관한 강연을 한적 있습니다. 의외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의학은 이제 양의학과 병립해 세계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1957년 서울 태생,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했다. 박사학위도 경희대서 받았다. 1988년부터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2008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장, 2009년 한국한의학표준연구원장을 거쳐 2011년 8월부터 한국한의학연구원장직을 맡아왔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WHO 서태평양지역 전통의학 자문관을 지내면서 당시 중국 중의학 주도로 진행하던 전통의학 표준화에 한의학의 목소리를 강하게 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전통의학대학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최근엔 국제보안의학회 아시아 지역 커뮤니티(아시안 챕터) 초대의장으로 선정됐다.
한의학 국제표준 확립을 위한 국제적 협의체인 `국제표준화기구 전통의학분야 기술위원회(ISO TC249) 한국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다. 180여 편의 논문 외에 저서로 `한의학이야기`, 영문 `동의수세보원` 등이 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