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거침없는 행보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지난주 구글은 모바일 오피스 앱 대표 회사인 퀵오피스를 전격 인수했다. 상징적 행보다. 모토로라의 통신부문 인수가 단말 제조부문의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면, 이번 인수는 모바일 생산성 도구 분야에서의 야심을 보여준 단적인 `사건`이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계 일각에서 거론하는 위기론의 배경이다. 위기론은 종종 외부의 환경변화와 이에 따른 자신감의 결여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법이다. 그동안 쌓아온 반도체·디스플레이·부품의 경쟁력이 글로벌 기업 간 주도권 다툼과 기술 패권주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크다. 오피스 시장은 단숨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애플 등 3파전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이전의 구글 독스가 소프트웨어서비스(SaaS)형 오피스인 데 반해 퀵오피스 제품군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오피스다. 이미 3억대의 기기에 탑재됐다.
당장 국내 오피스 업체들은 설 땅이 없어졌다. 인프라웨어·한글과컴퓨터 등 국내 SW기업은 안드로이드폰 오피스 시장의 60%를 차지했으나 구글이 이 분야 1위인 퀵오피스를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패키지에 기본 탑재하면 싸움이 쉽지 않다.
글로벌 기업의 OS·플랫폼 패권 다툼에 막막한 것은 우리 기업이다.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 MS의 윈도 3대 진영의 각축전은 패권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애플의 패쇄성은 제국주의적 패권화 경향을 보였다. 구글-모토로라의 결합과 MS의 모바일 분야 공략은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의 자기완결적 패러다임 구축을 지향한다.
가치사슬도 그만큼 공고해졌다. 그럴수록 국내 기업의 입지는 위축된다. 가치사슬이 수직적 통합화와 수평적 확대 어느 쪽이든 우호적 환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위기론의 진앙지다. 반도체·디스플레이·부품 분야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한 삼성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C-P-N-D와 서비스로 이어지는 자기완결적 패러다임 구축이 용이하지 않은 까닭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더욱 그렇다. 마이피플, 라임 등 국내 기업의 서비스는 분초 단위로 변화하는 글로벌 기업의 합종연횡과 언어 확장성 탓에 갈수록 입지가 옹색해지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의 확장성은 무기 그 자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큰 힘이다. 그러나 카카오톡은 규제와 통신사들의 견제에 언제 한 방에 훅 갈지 모르는 신세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디아블로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게임업계의 위기론은 실제 이상이다. 오죽하면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한 배를 타자고 했겠는가.
현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모바일 분야까지 확산되는 클라우드 전 진영의 주도권 싸움도 우리 기업과 상관없이 전개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오라클·아마존·MS 등이 우리에게 줄서기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모바일을 넘어 스마트TV 시장의 샅바싸움은 더욱 힘겹다. 삼성·LG·소니 등 전통 TV업체와 구글·애플·아마존 등 서비스·콘텐츠 진영 간에 벌어지는 주도권 다툼은 크리스텐센의 `파괴적 혁신`을 불러올 것이 확실시된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은 애플·구글만 뒤따라가자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급급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된 ICT 거버넌스 논의는 더욱 당황스럽다. 위기론의 실체에 무감각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작금의 위기론은 그저 위기론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패권주의의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