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선을 앞두고 정부 조직개편 논의가 급부상했다. 그간 물밑에서 논의돼 오던 다음 정부조직 밑그림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자 부처간 기싸움도 뜨겁다. 업무영역을 놓고 논리 개발과 정치권을 상대로 설득작업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특히 MB정부의 분산형 ICT 거버넌스에 비판이 거세지면서 차기 정권의 ICT 거버넌스 대안을 놓고 설전이 벌어진다. `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 시리즈 3부에서는 수면 위로 부상한 ICT 거버넌스 개편안들을 집중 분석한다. 여러 개편안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논의가 더욱 풍성해질 것을 기대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ICT분야 경쟁력 지수인 `네트워크 준비지수(NRI)`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두 계단 떨어진 12위를 기록했다. 1년만에 다시 10위권밖으로 밀려났다.
NRI 지수는 MB정부 들어 2009년 11위로, 2010년 15위로 급락하다 지난해 10위로 반등했다. 하지만 다시 10위권밖으로 밀리면서 정부의 ICT 진흥 정책 실패가 또 도마에 올랐다. 특히 규제 중심의 정부 거버넌스 체계가 이번 순위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면서 ICT 독임부처 부활 논리가 다시 힘을 얻는 양상이다.
ICT 독임부처 설립안은 ICT 거버넌스 재편 논의의 `뜨거운 감자`다. MB정부의 분산형 거버넌스 체계의 난맥상으로 국가 ICT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일찌감치 대안으로 부상했다.
ICT 독임부처는 과거 정보통신부처럼 장관급의 한명의 국무위원을 주축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집중형 거버넌스 체계를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ICT 독임부처는 과거 정통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ICT 환경에 맞춰 보다 폭넓은 분야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MB정부에서 도입한 방송·통신 융합은 물론이고 네트워크·단말·플랫폼·콘텐츠 등 스마트 생태계를 아우르는 업무영역이 포함된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산업진흥 업무를 기본으로 지식경제부의 정보통신산업정책관 업무를 독임부처에 이관하는 것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고 있는 디지털콘텐츠 진흥기능과 행정안전부의 국가정보화와 정보보호 기능도 독임부처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만 산업진흥 업무를 독임부처를 모으되 규제 업무는 독임부처 산하나 별도로 위원회 조직으로 분할한다. 독임부처내 산업 진흥과 규제에 대한 의사결정을 이원화하는 방안이다.
이 같은 ICT 독임부처 개편안은 MB정부 ICT 거버넌스의 한계와 단점을 철저하게 반성하면서 나온 모델이어서 ICT업계에서 많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간 방통위는 방송규제에만 적합한 위원회 구조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진흥업무마저 위원회 위원들간 정치적 대립으로 표류하면서 세계 ICT산업 흐름에 뒤처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통신업계 한 임원은 “과거 독임부처 시절에는 정부 정책 결정이 빨라서 세계 ICT 흐름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이 예측 가능했다”며 “위원회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이 느린 것도 문제지만 정치 논리에 의해 하루 아침에 정책이 뒤집히는 리스크도 심심찮게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으로 700㎒ 유휴대역을 통신용으로 재할당하려는 논의가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아직도 결론을 못낸 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세계표준화기구인 ITU(국제전기통신연합)에서 이미 700㎒를 4세대(G) 통신 주파수 대역으로 확정했는데, 우리나라는 정치 논리에 따라 방송용으로 할당될 가능성도 높다.
지경부·문화부·행안부 등으로 분할된 ICT 진흥업무를 독임부처로 이관하는 것도 스마트 혁명이라는 시대흐름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네트워크·정보기기·콘텐츠·플랫폼 등 산업 영역의 분리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도 이들 산업이 어우러진 스마트 생태계 경쟁력을 높이는데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MB정부 분산형 거버넌스로 벌어진 부처간 영역다툼과 업무처리의 비효율성도 크게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클라우드 산업 육성 정책은 지난 4년간 행안부·방통위·지경부가 서로 주무부처를 주장하며 싸우면서 사실상 표류했다. 일본 정부가 강력한 범정부 클라우드 육성 정책으로 한국을 멀찌감치 앞서간 것과 큰 대조를 보였다. 디도스(DDoS) 공격 등 대형 보안 사고 때 정부부처가 우왕좌왕한 것도 분산형 거버넌스 체계의 대표적인 난맥상으로 꼽혔다.
독임부처가 설립되면 ICT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정책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되면서 업무 효율성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독임부처의 적극적 지원으로 ICT가 국가의제로 격상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과거 정통부에서 경험했듯, 단점도 없지 않다.
집중형 거버넌스는 자칫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잘못 잡고 추진한 뒤 실패할 경우 부작용이 산업계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ICT 독임부처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비판한다. 과거 정통부 시절 실패한 위피(WIPI)나 와이브로 정책을 대표 사례로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마당에 정부가 `컨트롤타워`로 나서기보다는 기업을 후원하는 `서포터타워`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분산형 거버넌스에서 다시 집중형 거버넌스로 조직 개펀이 이뤄질 경우 공무원 조직의 적응기간이 상당기간 필요한 점도 흠으로 꼽힌다. 각 부처마다 ICT 융합업무가 많아진 상황에서 다른 부처와 ICT 독임부처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대호 인하대 교수는 “ICT 독임부처가 탄생하더라도 과거 정통부처럼 수직적인 정책 수립보다는 플랫폼이 중요해진 스마트 생태계 환경에 맞춰 수평적인 정책 수립과 민간 기업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역할 중심으로 정부의 스탠스가 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는 “과거 집중형 거버넌스 덕분에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 등으로 우리나라가 ICT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위피 정책도 2000년대 초반에 나와서 우리나라를 무선데이터 통신 강국으로 선도한 성과도 분명히 있다”며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내수시장이 적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집중형 거버넌스에 기반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CT 독임부처 설립안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