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ICT 경쟁력이 다시 뒷걸음질쳤다. 정치 논리가 산업 논리에 앞서고 진흥은 뒷전인 채 규제 중심의 합의제 정부 거버넌스 체계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ICT 경쟁력 하락을 놓고 차기 정부의 독임제 ICT 거버넌스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세계 정보통신 보고서 2012`에 따르면 ICT 분야 경쟁력 지수인 `네트워크 준비지수(NRI)`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지난해보다 두 계단 떨어진 1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위권 재진입 이후 1년 만에 다시 10위권 밖으로 밀렸다. 순위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합의제인 `법·규제 환경`으로 꼽혔다.
우리나라 NRI 지수는 전체 142개국 중 11위(5.48점) 대만에 이어 12위(5.47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스웨덴(5.94점)과 싱가포르(5.86점), 핀란드(5.81점)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위·15위를 기록했던 네덜란드와 영국은 6위(5.60점)와 10위(5.50점)로 `톱10`에 진입하며 우리나라를 추월했다.
항목별로는 `환경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35위를 기록했다. 환경 지표 내 `기업·혁신 환경`은 15위로 그나마 선방했지만 `정책·규제환경` 순위는 43위로 지난해보다 두 계단 떨어져 전체 순위를 낮췄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규제에 대한 프레임워크는 여전히 주요한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정책 규제환경 세부 지표인 의회 입법 활동 효율성(123위)은 바닥을 기었고, 규제철폐 효율성(97위), 분쟁 해결에서 법체계 효율성(84위), 사법부의 독립성(69위) 등이 모조리 낮은 평가를 받았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미 `세계적 웃음거리`인 우리나라 입법부뿐만 아니라 규제 전담 기구인 합의제 방통위마저 국회 축소판으로 정파적 대립을 반복하고 있어 정책·규제 환경이 낮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ICT 거버넌스가 안정돼야 안정적인 10위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순위가 낮게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0위권 재진입`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지만 올해는 평가 결과를 언론에 별도 공표하지 않았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등 아시아권 국가 순위가 전반적으로 하락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대만·중국은 지난해 6위를 기록했지만 올해 보고서에선 11위에 머물렀고 홍콩도 한 계단 하락한 13위다. 이는 평가 기준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누구나 접속이 가능한 환경을 갖춘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입지를 높이는지`가 이번 NRI 평가 잣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사용 지표`는 스웨덴에 이어 2위에 랭크되며 순위 추락을 막았다. `개인 사용성` 2위, `정부 사용성` 1위, `기업 사용성` 12위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보고서는 “높은 교육수준과 가정인터넷 접속률, 모바일 인터넷 가입자, 전자정부 서비스 등에서 한국이 저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용어해설
※네트워크준비지수(Network Readiness Index)=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과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이 공동 발표하는 지수로 개인·정부·기업의 정보기술 발전도와 경쟁력을 종합 측정한 평가지표. 공개된 자료 외에 1만5000명 이상 되는 경영인이 참여하는 `경제인 설문조사(Executive Opinion Survey)` 결과도 반영된다.
*2012년 NRI 순위
*한국 NRI 순위 변동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