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미래다]<1부>멘토가 필요하다 (8)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스타트업이 새로운 물결이다. 젊은 세대에게 창업은 취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처음에는 성공만 꿈꾸며 창업을 하지만 확률적으로 실패를 맛보는 경우가 더 많다. 한 번도 쉽지 않은 창업을 여러 번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다른 창업자 경험이나 생각을 나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넥슨을 공동 창업하고 `바람의 나라` `리니지`를 개발한 우리나라 대표 게임 개발자. 게임 역사의 산 증인이자 한국이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은 국내 콘텐츠 산업 수출의 50% 이상을 담당하면서 차세대 먹거리로 조명 받고 있다. 송재경 대표를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이 만났다.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게임산업 대표 리더다. KAIST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김정주 대표와 넥슨을 공동 창업했다. 당시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넥슨을 창업할 때 이야기를 하면 길다. 대학을 다닐 때도 서울대, KAIST 동기였던 김정주 대표와 창업하자는 이야기를 늘 농담처럼 주고받았다. KAIST를 다니던 시절에 전길남 교수님이 지도교수였다. 박사· 석사과정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발표를 매주 했다. 박과사정 1년차 첫 발표 때 박사학위에 별 관심이 없고 한글 프리웨어 개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오픈소스`라고 하지만 그때는 `프리 소프트웨어`라고 불렀다. GNU(GNU`s not Unix)를 개발한 리처드 스톨만이 이 분야 선구자인데 이를 한국에서 해볼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교수님은 잘 해보라며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텍스트 머드게임이 유행했는데, 그래픽도 같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연구를 시작했다.

개발 관련해서 몇 번 발표도 했는데 교수님이 `그거 왜 하는 거에요?` 특유의 말투로 물어보셨다. 학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언했지만 교수님이 대학원은 아카데믹한 주제여야 하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셨던 것 같다. 1년쯤 박사과정을 더 하다가 한글과컴퓨터로 갔다. 창업하겠다는 생각은 그 이전부터 계속 있었다. 우리 세대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도 언젠가 창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허운나=1994년에 넥슨을 공동 창업한 것이 첫 번째 창업이고, 리니지를 개발한 엔씨소프트를 나와 2003년에 엑스엘게임즈를 설립한 것이 두 번째 창업이다. 첫 번째 창업과 두 번째 창업의 무게감은 어떻게 달랐나.

▲송재경=처음 넥슨을 창업했던 당시 나와 김정주 대표는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한글과컴퓨터를 다녀봤고 김 대표는 아무런 경험이 없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법인 등록, 회계 처리, 사무실 확보, 인터넷 설치, 회사의 이름을 정하고 로고 만드는 것, 직원을 처음으로 뽑고 관리 감독하고 일을 나누는 것까지 모두 처음이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개발만 하고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은 김 대표가 다 했다. 두 번째는 큰 회사의 임원까지 겪고 나오니 상대적으로 어려움은 적었다.

-허운나=창업하면 동업을 많이 한다. 어떤 동업자를 찾고 무엇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송재경=자기와 다른 사람이랑 하는 것이 좋다. 넥슨 창업 때도 나는 주로 개발만 했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일만 했다. 그러나 그런 것만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 내가 귀찮아하는 일은 김정주 대표가 밖에서 하고 다녔다. 김 대표도 전산학 박사 과정을 거쳐서 같은 기술적 지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나 대화는 잘 통했다.

무엇보다 무엇을 같이 해야 할지 잘 맞아야 한다.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든지 각자 성격이나 배경은 다르겠지만 목표는 같아야 한다.

-허운나=게임사 창업이 다른 기술 기반 벤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송재경=게임사는 직접 소비자를 상대한다. 어떻게 보면 고객과 직접 만나기 때문에 다른 눈치 볼 것이 없다. 대기업의 하청이나 정부 조달 사업을 하는 기술 벤처도 많다. 게임사는 소비자와 직접 일대일로 상대하는 것이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는 더욱 냉정하게 돌아온다.

-허운나=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결정은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

▲송재경=부사장 두 사람과 상의해서 하는 편이다. 내 마음의 결정이 됐더라도 상의하는 편이다. 물론 사장은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허운나=인생에서 중요한 멘토가 있는지 궁금하다.

▲송재경=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멘토는 전길남 교수님이다. 지금도 자주 연락한다. 전 교수님은 일본에서 강의를 하시며 국내에도 간혹 오신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인터넷 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데, 거기에도 교수님이 부르면 가서 일을 한다. 석사 과정에서 전 교수님을 처음 뵈었는데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발표를 하는데 맞담배 피는 것이나 다리를 꼬고 앉는 것 등 많은 부분이 자유로웠다. 교수 앞이나 5년 이상 선배 앞이나 상관없었다. 그 때 사회분위기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교수님은 한국 사회의 위계질서가 소통이나 발전에 가장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셨다. 잘못된 권위의식을 바꾸고 싶어 하셨다.

-허운나=전길남 교수님은 가정에서도 남녀 역할을 완전히 바꾸는 등 교육방법도 독특하다.

▲송재경=맞다. 나도 일하는 부분에도 영향을 받았다.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일은 철저했다. 발표 첫 페이지에 오타나 스펠링이 틀리면 다음 페이지로 아예 넘어가지를 못 했다. 발표를 만든 본인이 그 내용을 두 번, 세 번 안 본 것이라고 보셨다. 본인이 여러 번 확인하지 않을 것을 다른 사람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회사에서 마찬가지다.

-허운나=송 대표가 처음 창업을 했던 시기는 PC통신에서 인터넷 게임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이젠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로 전환되는 시대라고 본다.

▲송재경=86학번, 90학번 세대 이야기다. 90년대 중후반에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일종의 기회의 `창`이 잠깐 열렸다. 그 때 시작한 회사들이 넥슨, 엔씨소프트, NHN이다. 지금도 그렇게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다. 모바일·스마트폰을 기반으로 2~3년 잠깐 기회가 오는 셈이다. 지금 20대가 그런 기회를 잡아야 한다.

-허운나=교육공학 전문가인데, 어느 날 보니 학생이 다 게임만 하고 있더라. 게임은 미래 산업이지만, 부작용도 일부 있다. 청소년의 게임과몰입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송재경=내가 KAIST를 다니던 시절에도 기숙사에서 밤새서 머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했지만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의 관심이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부모님이 보살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학교나 회사,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칼 퇴근을 하거나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근무시간을 유동적으로 하면 집에서 부모와 아이가 같이 놀 수 있다. 모든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같이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게임 이용하는 시간을 나라에서 정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허운나=게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사람 중에 하나다. 젊은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듣고 싶다.

▲송재경=창업은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 너무 겁먹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젊다고 말하는 20~30대에는 아무 생각 없이 도전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는 큰 자산이다. 엑스엘게임즈에도 창업했다가 망해서 온 사람이 많이 있다. 실패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 고생해본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한다.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사람도 여럿 있다. 실패를 맛보고 어려움도 아는 사람들이 더 잘하고 회사 입장에도 좋다. 어른스러워진 것이라고 봐도 된다.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창업이 이뤄지는 대표적 장소가 실리콘밸리다. 미국에서도 동부도 안 되고 하버드나 MIT도 안 된다. 지구가 넓지만 딱 거기서만 된다. 실패가 용인되고 정해진 코스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삶만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 고생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고 부추기고 용인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가 정체되지 않으면서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학원을 다니고, 그런 정해진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위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우려된다.

젊은 사람에게는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넥슨 창업 초기 2년 동안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고 개발만 했다. 다른 일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게임 개발에만 몰입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이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운 일이거나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있다. 13평짜리 오피스텔에서 먹고 자며 고생했던 것도 몇 년만 지나면 무용담이 될 수 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