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오해석 경원대 교수를 IT특보를 임명했다. 4개월전인 4월 22일 정보통신의 날을 기념, 청와대에서 마련한 IT업계 오찬 간담회에서 “IT전담관을 두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IT특보 임명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IT정책이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 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 등 4개 부처로 분산, 미래성장동력인 IT정책을 컨트롤할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시장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IT특보로 한계=IT특보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IT산업 동향과 여론을 생생하게 전달해 정부 정책결정에 효율적으로 반영되는데 일조했다. IT특보는 IT산업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던 대통령을 되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적극적 활동으로 대통령과 IT산업계간의 이해 증진과 협력을 이끌어내 대통령이 IT를 홀대한다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부처 업무조정에 있어 IT특보의 역할은 한계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규제기능은 방통위, IT산업진흥은 지경부, 공공정보화와 정보보안은 행안부, 콘텐츠 부문은 문광부로 IT관련 업무를 분할했다.
정책기능을 전담 부처없이 다수 부처에 분산하다보니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회피하는 정책 결정 및 집행 사례가 속출했다. 부서간 이해관계 속에서 정보통신정책이 부처별로 점진적 방식으로 수행되면서 업무 추진력이 약화됐다. 근본적 혁신 노력은 지연되기만 했다. 결국 분산형 IT거버넌스 체계는 조정기능의 부재로 결함이 드러났다.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일사분란하게 추진되던 업무가 여러 부처로 분산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이런 문제를 비상근직인 IT특보가 조정능력을 발휘해 중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때문에 IT특보는 조정역할 보다는 대통령 자문역할과 미래비전 밑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지난해 11월 IT특보가 총괄하고 4개 IT 관련 부처와 업계, 학계가 모여 2020년 글로벌 IT 최강국 도약을 위한 IT미래비전기획단을 출범했는데 IT정책을 조정하는 기능은 없고, 미래 IT비전과 공동의 정책방향을 수립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한 대학교수는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존폐가 좌우되는 비상설 임시조직으로서 휘하에 지원 행정부서와 인력이 거의 없는 IT 특보가 중심이 되어 관계 부처들의 정책을 원활하게 조정하는데는 근본적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정보화전략위, 추동력 미흡=IT특보 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와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장관급)실도 기대에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의 전신은 96년 출범한 정보화추진위원회다.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였으나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으로 바뀌면서 이름을 변경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바뀐 이유는 IT특보 신설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부 해체후 각 부처로 흩어진 IT업무를 조정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보통신부 보완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위상이 대통령 소속으로 격상되고, 위원 절반이 민간전문가로 채워져 공공 거버넌스 차원에서 진일보했다. 전신인 정추위가 본위원은 정부위원으로만 구성되고, 외부 전문가는 자문위 또는 전문위에 참여했던 것과 비교할 때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정보화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의 수립, 지식정보자원의 지정, 정보 문화의 창달 및 정보격차해소 사업의 우선순위 결정 등 국가정보화 전 분야 정책을 심의하는 정보화정책과 관련된 최고 기구 위상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정보사회 패러다임을 반영한 미래지향적 정보화 정책 아젠다를 발굴·추진함으로써 국가정보화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국가정보화의 영역을 `각 부처의 정보화 사업`으로만 국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위원회 한 민간위원은 “일부 부처는 전략위원회를 특정 부처의 소속 기관으로만 생각하고 고유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다”며 “비전과 추진방향, 핵심과제의 대표성, 과제 주도권도 모호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자원동원과 집행력이 없고 대통령 및 대통령실과 연계성이 불분명해 추진동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IT거버넌스가 분산형 체제를 유지한다면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화방안은 현재 기본 체제를 유지하고 예산권과 평가권을 부여해 중복 사업을 조정하고 IT와 타 정책영역과 융합정책을 총괄, 기획해 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한적 조직권 확보 △대통령 교류채널 확보 △산하기관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 전략위 위원장이 IT특보를 겸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IT수석 두고 IT 국정과제로 삼아야=이명박 정부는 후반기에 접어든 2010년 7월 미래전략기획관(장관급)을 신설했다. 타 수석실에 있던 과학기술비서관과 방송정보통신비서관·미래비전비서관을 이관 받아 조직을 꾸렸다. 과학기술계와 정보통신산업계가 줄기차게 제기한 미래 성장동력 정책과 전략을 집중화해달라는 요구를 수용한 결과였다.
IT특보와 역할 조정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청와대는 물론 정부 내 IT의 역할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업무 초점이 정부 출범 당시 표명했던 국정과제가 차질없이 수행되고 있는지에 맞춰져 미래전략기획관의 조정역할은 미진했다.
따라서 미래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IT산업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으려면 IT수석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IT 독임부처를 신설하더라도 청와대에 IT 수석이 있으면 대통령이 IT분야에 보다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타 부처와 갈등을 조정하거나 융합IT 분야의 거버넌스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정부 출연연구소 연구원은 “독임부처로 가던 분산형으로 가던 IT정책을 국가 수장이 대통령에게 설득하고, 관련 부처와 협의·조정·추진할 IT수석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IT컨트롤 타워 필요한가.
IT업계의 빠른 변화에 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 미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향후 IT거버넌스에서 청와대 컨트롤타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현재 부처 성격이나 형태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 컨트롤타워의 모습을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와대 조직이 IT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볼때 IT관련 부처가 독임부처가 될 것이냐 아니면 현재처럼 업무 분산체제로 가느냐에 따라 청와대 조직도가 유동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주장이다. IT 독임부처가 만들어지면 청와대 컨트롤타워 역할이 줄어들 것이고 분산형으로 가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업무가 부처별로 분산되면 부처간, 그리고 부처내의 정보통신부서와 타 부서 간의 책임회피 가능성이 크다. 단위조직간 신뢰화 협력을 바탕으로 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호 불신과 경쟁으로 최적 상태로 가지 못하고 손해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분산형으로 간다면 청와대가 IT컨트롤타워로서 조정과 업무 추진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분산형을 간다면 IT수석(장관급)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IT수석이 CTO역할을 하며 관련 부처 차관급 회의를 주재하고 조정 및 일사불란한 업무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컨트롤타워 청사진은 연말 대선까지 정치권에서 계속될 IT거버넌스 논의에 달려있다.
현재 정치권이 거론하고 있는 윤곽대로라면 청와대 컨트롤타워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다. 정치권도 IT정부부처 개편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독임부처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정보통신 산업진흥과 콘텐츠 기능을 통합하는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키로 했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과거 정통부와 과학기술 기능을 통합한 미래부 신설을 검토 중에 있다. 이처럼 만약 독임부처로 간다면 IT수석이 신설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정치권과 달리 관련 부처와 업계는 분산된 IT거버넌스 체계로 업무가 잘 추진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독임형을 주장하는 입장과 과거 정보통신부와 같은 집중형의 실패한 정책을 근거로 일원화보다는 조정을 강화해 현재 체제를 보완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청와대 컨트롤타워 논의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