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잃은 새. 일본 전자업계의 현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2000억엔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간판 기업 소니, 연내에 본사 인력 절반을 감원하기로 한 파나소닉, 대만 홍하이그룹에 넘어간 샤프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반도체 업계도 마찬가지다. 법정관리에 이어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엘피다는 물론이고 도시바와 르네사스 등도 줄줄이 흔들리고 있다. 조만간 일본의 반도체 산업 기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전자 업계의 현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멘붕(멘탈 붕괴)`이 딱 들어맞는다. 원인은 다양하다. 단기적으로는 지난해 대지진에 이은 전력난, 엔고, 태국 홍수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모바일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술력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진 데 있다.
특히 `갈라파고스`로 비유되는 일본 업체들의 지나친 국수주의가 근본 원인이다. 최고의 제품을 위해 자국 부품만 고집하고 수직계열화를 지나치게 추진한 것이 결국 부메랑이 됐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결국 갈라파고스의 고고한 백조에게서 날개를 빼앗아 간 셈이다.
작금의 일본 상황은 우리나라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반도체,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직계열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에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물론 비용 절감, 사업 및 계열사 간 시너지 확보, 규모의 경제 등 장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공생해야 할 국내 중소기업의 사업 기반까지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왜 일본이 실패했던 모델을 굳이 따라 하려 하는가`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가라앉고 있는 갈라파고스의 실패 사례와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양종석 소재부품부 차장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