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도미노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연이어 무너지고 있다. 골패 하나가 쓰러지면 그 영향으로 다른 패까지 잇따라 넘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D램 반도체 대표주자 엘피다가 쓰러지더니 일본 반도체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아날로그 반도체마저 흔들린다. 세계 반도체 서열 5위 르네사스가 위기설에 시달리고, 아날로그 반도체의 원조격인 로옴도 실적 하락으로 울상이다.

엘피다 인수에 나섰던 도시바는 자금 부족을 이유로 SK하이닉스에 제안했던 공동 인수마저 포기하고 백기를 들었다. 엘피다 인수에 돈을 쏟아부었다가 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도시바는 어렵사리 엘피다 패를 피했지만 자국 내 D램 반도체 명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일본 정부와 반도체 원로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TV시장 경쟁에서 밀려 첫 번째 패가 넘어간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은 두 번째 패도 중심을 잃었다. 수익성 악화로 몸살을 앓는 디스플레이 업계가 허리띠를 졸라매자 관련 장비 업체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고객이 줄어든 소재와 부품 업계는 `탈 일본`에 나섰다.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 전체가 넘어지는 형국이다.

그동안 사업 부진을 `엔고(円高)` 탓으로 돌렸던 일본 업계는 이제야 `경쟁력 부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언제든 시장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일본 학계도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미노의 속성은 연쇄 붕괴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순차적으로 넘어간다. 일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 바로 그 상황이다. 쓰러진 패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비틀거리는 패들을 붙잡기도 벅찰 지경이다. 일본 기업들은 지금 반성도 필요하지만 당장 떨어진 발등에 불부터 꺼야 할 형편이다.


서동규 국제부 차장 dk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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