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시장 규모는 얼마입니까?”
대형 연구개발(R&D) 국책 과제를 기획한 이들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수십년 동안 지겹게 들었다. 전력반도체, 그래핀, 나노 등 한 번씩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과제들은 모두 이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불과 10여년 전,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 국책 과제의 지상 최대 목표였을 때만 해도 이 질문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당시에는 선진국이 어떤 정책을 펼치는지, 해외 경쟁사들은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국책 과제의 평가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에 아직 나오지 않은 기술을 선행해 개발하려고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외에서 개발하고 있거나 시장 규모가 산정이 된다면 그 기술은 이미 선행 기술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국책 과제 심사 과정에서 같은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국책 과제는 국민의 세금 수십·수백억원을 투입한다는 점에서 꼼꼼하게 검증해 선정하고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명제 때문에 국책 과제의 의미 자체가 퇴색돼서는 안 된다.
다행히 최근 정부의 R&D 정책 기조는 조금씩 달라진다. 성과 중심에서 도전적 R&D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내 R&D 성공률은 90%가 넘는다. R&D를 그만큼 잘 진행했다기보다는 될 만한 R&D만 시도했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더 이상 해외 기업이 산업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추격자를 따돌리고 먼저 미래로 달려가기 위해 시장이 아직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이 필요하다.
또 실패에 대한 내성도 키워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실패가 요소 기술 습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이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어떤 시장을 만들어 볼까요?”
문보경 소재부품부 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