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폭스콘 혹은 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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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협력사인 폭스콘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잇단 중국 노동자들의 자살로 이슈가 됐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 최근 `협력이익 배분제`로 대기업과 협력사가 상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 내놓고 있다. 원가 절감 압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기업은 부품·소재 가격을 계속 낮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협력사는 트렌드 변화에 대응해 적합한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면 공급사슬에서 탈락하는 게 현실이다.

어려운 기업환경에서 생존하는 것뿐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익을 내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힌트는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의 성공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효율적인 생산으로 내적 역량을 쌓고, 시장의 요구에 적극 대응한 것은 보쉬 성공의 시발점이 됐다. 완성차 업체와 공동 개발·생산하고,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과 서비스 현지화에 집중했다. 물류시스템도 최적화해 끊임없이 원가 절감을 시도했다. 이런 혁신 덕분에 보쉬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와 동등한 수준의 위상을 확보하게 됐다.

동반 성장은 정책적 지원보다 본원적 가치 제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공한다면 적절한 이익을 낼 수 있다. 국내 업체 중에서도 보쉬와 같은 훌륭한 성과를 낸 사례도 있다. 이들의 성공을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면 우리 기업이 가야 할 청사진을 유추할 수 있다.

협력사 성장 모델을 보면 다양한 패턴이 분석된다. 애플 협력사인 인터플렉스는 스마트 기기 부품 중 하나인 연성회로기판(FPCB)을 생산한다. 강력한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삼성전자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 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인터플렉스에 FPCB 소재를 공급하는 이녹스 또한 이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스마트 혁명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한 결과, 성과를 즐길 수 있게 된 셈이다. 정전용량 방식 터치스크린을 개발해 스마트 기기 시장을 선도하는 에스맥도 같은 유형이다.

파트론은 보유한 핵심 역량을 기본 축으로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원가 절감을 단행해 안테나 등 고주파·반도체 분야에서 국내 1위다.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도 이익률은 업계에서 월등한 수준이다. 대기업과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효율적인 공급망관리(SCM)를 구축한 점이 주효했다.


특이한 성공 사례도 있다. 크루셜텍은 사용자 편의를 위한 옵티컬트랙패드를 최초로 개발해 리서치인모션(RIM) 등 해외 기업에 먼저 공급한 후 국내로 역진출해 대기업과 거래를 성사시켰다. 내가 아는 몇몇 기업은 크루셜텍을 벤치마킹해 국내 대기업보다 해외 거래처를 먼저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보통 국내 대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사보다 해외 거래처를 확보한 기업의 이익률이 더 높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평균이익률은 5%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난 몇 년간 애플 협력사 평균 이익률은 12∼13%였다. 연구개발 성과가 가장 높은 기업은 마케팅팀이나 영업팀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는 기업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다행히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조직이 단순해 경영자 주도로 혁신을 추진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10년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횡보하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원인을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에서 찾는 견해가 많다. 그동안 대기업이 일군 성과는 인정해야 하지만, 노력의 과실이 쏠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세계 1위 기업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기업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불안하다.

이의훈 KAIST 경영학과 교수 euehunl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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