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차가 빠졌는데 탑승자 중 정치인 2명만 빼고 모두 안전하게 구조했습니다. (분개하며) 더 이상 이 세상을 오염키시지 말라고…” “야 인마! 거꾸로 했어야지…그렇게 하면 그 많은 서울 시민들이 오염되잖아!”
한 때 시중에 회자된, 정치인을 비하한 우스개다. 반대로 주위 보좌관들에게 맡기지 않고 불철주야 국정감사 준비로 눈이 충혈돼 국정 문제점을 족집게처럼 밝혀내고 제도개선까지 하거나,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존경받는 정치인들도 많다.
두 부류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주어진 권한을 개인 이권을 위해 이용하느냐, 아니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 정치인의 잘못도 크지만 이들을 찍은 유권자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 정치가 화두다. 총선에서 후보자 판단 기준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온고이지신으로 재조명해 보자.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사람을 가리는 방법에는 네 가지다. `신`은 풍채나 외모가 풍성하고 훌륭함, `언`은 언변이나 말투가 분명하고 바름, `서`는 글씨체가 굳고 아름다움, `판`은 글의 이치가 우아하고 뛰어남을 의미한다.
뉴 밀레니엄 지식정보화 시대에 무슨 구태의연한 기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네 판단 기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총선 때 훌륭한 판단 기준임을 깨닫게 된다.
첫째, 풍채와 용모를 뜻하는 `신`에 대한 필자의 현대적 해석은 소위 소개팅에서 힘을 발휘하는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사람은 나이 오십 되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육순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웃음 지을 때면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아 보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평을 종합하면 내공이 뛰어나면서도 마음은 따뜻하고 사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모 고위공직자에 대해 “완전 범죄상이더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외모가 무슨 상관일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직자로서 그 사람의 행동은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둘째, 언변을 의미하는 `언`은 `그 후보자는 아나운서 출신이라 달변이야`라는 뜻이 아니다. `말씨를 보면 그 사람 교양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인으로서 훌륭하더라도 표현이 논리정연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불을 끄는 것은 물밖에 없다`는 진리도 진심과 열과 성이 배어난 눈물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글씨를 뜻하는 `서`는 손으로 쓴 글씨라는 의미가 아니다. 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 등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뜻한다. 국내외 선진 기업은 입사 지원자의 품성을 평가하기 위해 지원자의 소셜미디어를 분석한다. 이제 우리 정치권에서도 공천이나 투표 기준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한 유권자와의 소통 능력이 지대한 관심사로 부각됐다. 혹자는 둘째 기준인 `언`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똑같은 1:1 또는 1:N 소통이지만 둘째 기준인 `언`은 상대방을 직접 보면서 소통하는 반면, `서`는 직접 보지 않고 상대방을 의식한다는 차이가 있다.
넷째, 판단력을 의미하는 `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후보자를 평가하는 좋은 기준이다. 아무리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고 진심과 열과 성이 배어나는 언변이며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해도 판단력이 부족하면 모두 허사다. `판`이 뛰어난 사람치고 필자의 현대적인 해석에서 신·언·서가 문제되는 사람은 없다.
오는 총선에서 우리 조상이 중요시한 사람 평가 기준인 `신언서판`을 근거로 투표해 보자. 나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에 의한 투표 행사는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기여할 것이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jioh@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