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재생에너지 기업이 해외로 활발하게 진출하려면 한국시장에서 실적을 많이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EO)
“우리나라에서도 안 써주는데 해외에선 쉽게 써주겠습니까. 공기업이 구축하는 풍력단지에도 국산제품이 들어갈 여지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재생에너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재생에너지 수출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기업 CEO)
신재생에너지 관련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EO와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 CEO가 한 말이다. 말한 시점과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국내시장에서 인정받은 제품이 해외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신재생에너지를 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신재생에너지 강국이 되기 위해서다. 정부는 태양광을 제 2의 반도체산업으로 키우고 풍력을 제 2의 조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태양광 산업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과 기술이 유사하고 용접과 단조 기술을 필요로 하는 조선산업과 풍력산업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삼성·LG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이 태양광 시장에 뛰어들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체가 태양광 장비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조선업체가 풍력사업을 제 2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역 1조달러 달성 주역이 반도체·자동차·선박 산업 등이었다면 2조달러는 태양광·풍력·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한 축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내 풍력발전단지 개발도 활기를 띤다. 하지만 국산 풍력발전기가 자리 잡을 여지가 많지 않다. 국산 제품이 없던 과거에 비해 설치 대수는 증가했지만 아직 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의 90%는 외국산이다.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국내기업은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프로젝트에서도 번번이 탈락한다.
최근 한국동서발전과 동국S&C가 경주 조항산에 조성 중인 20㎿ 규모 풍력단지 사업에서 가격을 낮게 써낸 외산 풍력발전기 업체가 낙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은 동서발전이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에 따른 의무 발전량을 채우기 위해 민간기업과 특수목적법인(SPC) 형태로 참여했다. 낙찰 소식이 사실이라면 풍력발전기 업계의 실망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RPS를 도입한 목적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를 국산 제품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은 없다. 하지만 국산제품 채택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보고 참여한 기업은 허탈할 뿐이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산업 육성을 위해 과거에 발전차액지원제(FIT)를 도입했다. 그러나 FIT는 과도한 예산부담 때문에 폐지했고 올해부터 RPS로 대체했다. FIT 시절 태양광발전 사업 러시가 있었을 때 국내 태양광산업이 동반 성장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당시 국내에 태양광산업 핵심인 태양전지를 생산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중국이나 미국·일본 기업은 혜택을 받았다. 국내 기업이 태양전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그 이후였다. 지금은 공급과잉으로 힘들어 한다.
풍력산업도 마찬가지다. 이제 시작하는 국내 기업이 적어도 걸음마를 뗄 때까지는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한 실적을 쌓기 위해 정부가 영흥화력발전소(한국남동발전)에 조성한 풍력단지는 좋은 사례다. 테스트베드는 만들어 주되 참여 기업이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엄격하게 평가해 기술력 있는 기업이 해외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