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로 예정된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8개월 앞두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상파 방송사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1일 방통위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디지털 전환 지원사업 점검단 회의에서 지상파 디지털전환 추진 모임인 DTV코리아와 방통위 관계자가 `취약 계층 지원시스템` 사이트 접속 문제를 놓고 시비가 붙었다.
방통위에서 지금까지 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해서 지원 신청과 디지털 전환 현황을 볼 수 있었던 권한을 방통위와 관리 기관인 한국전파진흥협회(RAPA)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상파 측은 “지원율을 숨겨서 디지털 전환 지원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걸 감추기 위해 접속을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방통위 측은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개인정보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스템에 보안을 강화한 것 뿐”이라며 “자료를 요청하면 언제든지 공개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 뿐만 아니다. 지난달부터 KBS·SBS·EBS는 방통위 요구로 아날로그 지상파 직접 수신 세대만 볼 수 있도록 화면 30%가량을 가려서 디지털 전환 관련 자막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상파 측은 자막 방송이 아니라 면대면 홍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수도권을 시작으로 디지털TV·컨버터를 취약 계층에 지원해왔지만 6만5422가구(3월 2일 기준)가 전환한 데 그쳐 디지털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에서는 이미 면대면 홍보는 물론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이유는 아날로그 방송 전환에 따른 주파수 회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 지금까지 지상파 방송은 14~60번 채널(470~752㎒), 임시 디지털 방송용 채널 61~69번(752~806㎒)를 써왔다.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면 이 중 52~69번 채널(698~806㎒)을 반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상파 측은 송신소 간 간섭현상 등을 이유로 기술직 모임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에서 디지털 전환 시점을 늦추고 698~806㎒ 대역 108㎒ 주파수 회수 일자를 연기할 것을 요구해왔다. 3D·초고선명(UHD)TV 등을 위한 용도로 남겨둘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디지털 전환을 하려면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도 지상파 방송사에 부담이다. 카메라, 주·부조정실 등 모든 기기와 설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통위에서는 통신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통신용 주파수가 많이 필요하므로 방송용 주파수를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디지털 방송 전환도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흐름이라고 보고 추진해왔다.
지상파 방송 4개사가 올해 총선·대선을 겨냥해 디지털 전환 연기를 공식적으로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에서는 국정감사 권한이 있는 국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공동으로 연기 선언을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