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후임 방통위원장 정치인 안된다

 방송통신위원회 출범시 관료 사이에 회자됐던 얘기 한 토막. 2008년 초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일부 기능을 버무려 만든 방통위 초대 수장으로 최시중 위원장이 오자 관료들은 안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처가 찌그러진 마당에 힘없는 인사가 올 경우 그나마 갖고 있는 정보통신·방송 진흥 기능마저 지경부, 문화부에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단순히 규제 위원회로 갈 경우 부처로서의 존재감조차 잃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강박관념이 컸다.

 결과는 어떤가. 여권 실력자로 꼽히는 최 위원장은 임기 내내 정치적 잡음에 시달렸다. 미디어법과 종합편성채널에만 매달렸다는 평가가 나왔고, 방송사 인사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보통신 정책은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정보통신에 관한 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정보통신은 어려워서 ‘4년 동안’ 공부만 한 셈이었다.

 그런 방통위에 다시 후임 논의가 일고 있다. 청와대가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손기식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송도균 전 방통위 부위원장, 홍기선 케이블TV시청자협의회 위원장 등 4명을 놓고 인사검증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 의원은 중앙일보 출신이면서 미디어법 통과의 ‘언론5적’으로 지탄받고 있고, 송 전 부위원장은 SBS 출신으로 통신에는 문외한이라는 약점이 있다. 손기식 성균관대 법학대원장은 판사 출신의 법조인이고 홍기선 케이블TV시청자협의회 위원장은 교수 출신의 방송학자다. 두 인사 역시 규제기관인 방통위 ‘행정’에 어둡다.

 모두 미래 먹을거리 부처와는 거리가 있는 인사들이다. 방송계 후보 일색이다. 방통위를 바라보는 청와대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파견 방통위 공무원 역시 방송을 아는 인사를 요구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말해 여전히 정치적이다.

 우리 경제는 현재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IT는 미국과 유럽의 텃새를 극복하기 어렵고 중국과 인도 등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부품 등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 지수나 각종 산업 지수의 위협적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대·중·소 생태계 구축 상황은 더욱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 녹록한 상황이 아니다. 미래부처인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해체한 이후 이 같은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IT코리아 위상은 간데없고, 오로지 대기업·보수 주도의 미디어산업 재편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혜에 특혜를 얹어주는 종편 챙기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권력에 힘이 빠지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것은 해바라기성 미디어다. 이해관계가 소멸되면 가차 없이 돌아서는 게 해바라기성 미디어의 특징이다. 최 위원장 사퇴 이후 보인 미디어의 논조를 보라.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권력과 영광을 찾아나선 것일까.

 그런 점에서 호사가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중립적 인사에 대한 방통위 안팎의 요구는 음미해볼 만하다. 그 중립적 인사는 바로 테크노크라트다. 데자뷰라고 했던가. 정치인이 다시 위원장으로 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조직은 더욱 망가질 뿐이다. 방통위를 정권창출 전위대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사가 다시 만사(萬事)다. 수천년 전 과거에도 그랬고, 첨단 정보화시대라는 오늘에도 그렇다. 진정한 위정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을 바로 볼 줄 알며,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하산길에 들어선 권력이 굳이 정치인을 불러들여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