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슈퍼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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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벤처기업을 창업한다’고 하면 주로 대학을 중퇴한 젊은 천재들이 차고를 빌려 회사를 차리는 것을 연상한다. 20대 초·중반에 억만장자가 된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나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로 대표되는 성공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스타트업(Start-up)이 지닌 ‘스펙’은 이런 모습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비즈니스전문 SNS 링크드인이 창업 경험을 가진 회원 1만3000만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스타트업 기업은 주로 애플·구글·야후·이베이·EA·MS와 같은 IT공룡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창업 이전 직장 경력도 평균 2년 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30~49세에 창업하며, 높은 교육 수준에 고급 인맥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성공 창업자는 벤처캐피털, 홍보, 리크루팅 분야 사람과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열심히 배우고, 다른 사람 조언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링크드인이 추출한 창업 성공 DNA다.

 그래서 엔젤 투자자들은 ‘기술이나 제품보다는 창업가와 그 주변 사람에 투자한다’고 말한다. 기업과 비즈니스에도 선순환 생태계가 있다. 기업은 창업으로 출발해 위기를 넘어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과정을 거친다. 기업가 대부분이 어렵게 창업을 결정하지만 성장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시련과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런 과정을 개인적 열정과 샘솟는 아이디어만으로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창업자와 주변 동료들이 얼마나 탄탄한 경험과 팀워크를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할리우드도 과거엔 장기 계약을 한 배우와 영화 제작자들을 고용한 대규모 스튜디오가 주류를 이뤘다. 당시만 해도 영화는 휴대폰 생산공장과 비슷한 조립라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실리콘밸리처럼 프로젝트 중심의 역동적인 제작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 한 제작자가 작품 아이디어를 만들어 투자자를 끌어 모은다. 그리고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 배우와 기술자, 그리고 스태프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을 꾸려 영화를 완성한다. 새로운 산업, 특히 첨단 비즈니스는 이런 할리우드 모습을 닮아간다. 창의적인 ‘제작자(창업가)’가 ‘아이디어(사업계획)’를 내면 유능한 기술자와 투자자가 모여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대학을 중퇴하고도 차고에서 열심히 일해 성공하는 사람과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메커니즘 덕분이다.

 선배들이 쌓은 경험과 노하우도 초보 창업자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인생이나 기업 운영에서 지혜나 기술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배를 우리는 ‘멘토(mentor)’라 부른다. 영어에서 ‘스승’을 뜻하는 멘토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했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출정해 20년이 되도록 귀향하지 않는 동안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돌보며 가르쳤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끝내고 다시 돌아 왔을 때,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래서 멘토르라는 이름은 누군가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자 안내자 의미로 사용된다.

 동료가 넘어지면 부축하고, 어른이 아이를 보살피듯 먼저 길을 개척한 멘토가 뒤 따라오는 후배의 실수를 줄여 주는 것은 자연스런 인간 삶의 모습이다. 지금 주변에 나를 관심 있게 살펴주는 동료나 멘토가 없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다. 파란 바지에 빨간 팬티 입고, 지구 열두 바퀴를 혼자 날아다니는 슈퍼맨은 영화 속 얘기다. 비즈니스 세계에 ‘올빽머리 근육빵빵’ 슈퍼맨은 없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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