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일본은 지쳤고 중국은 멀었다고?

 행간(行間)을 읽는다는 말이 있다. 직접적으로 하는 얘기나 글보다는 그 말 혹은 글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해야 한다는 비유적 수사다.

 지난 주 글로벌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CES 2012’.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지 행사장에서 던진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언론은 그 행간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

 언론 대부분은 ‘일본은 지쳤고,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말로 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일본의 앞선 기술력과 중국의 빠른 추격전략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란 이전과는 다른 그의 자신감으로 읽은 것이다.

 ‘정신 안 차리고 있으면 금방 뒤처지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긴장이 된다’는 그의 발언은 흘려듣는 느낌이다.

 어느 것이 더 적확한 것일까. 제대로 읽기는 한 것인가. 다른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대표 최고 경영인으로서의 그의 화법은 상당한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변화의 속도와 폭을 생각한다면 그의 어법은 후자에 속한다. 끝없이 전개되는 글로벌 경쟁과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변화의 특성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3년 전 ‘아이폰 쇼크’를 생각해 보라. 전략적 대응 미숙으로 노키아·모토로라·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공룡기업이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아직도 헤어나지 못했다.

 삼성전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간신히 갤럭시 시리즈로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할 수 있으나 소프트웨어·하드웨어·중소기업·콘텐츠 생태계 구성 차원은 아니다.

 혹시라도 ‘CES 2012’에 참가하지 않은 최강 애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애플은 ‘아이폰 쇼크’ 진앙지다. 애플의 최대 강점은 공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휴먼인터페이스 기반의 창의와 혁신, 그리고 생태계 구축 능력이다. 그 진앙이 아이폰5나 아이폰6에 이르면 어떤 모습일지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아예 디지털시대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생각해 보라. 세계 일류기업들의 쇠락은 뼈아픈 대목이다. 코닥·파나소닉·소니·닌텐도 등은 더 이상 최고 브랜드가 아니다.

 예컨대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쇠잔한 기색을 보이더니 아예 스마트폰시대에 이르러서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닌텐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기 시장이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시장 축소와 경쟁력 저하로 내상이 깊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생겨난 현상들이다.

 중국은 쉬울까. 휴대폰은 물론이고 TV, 통신장비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우리 기업을 위협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천기술 개발에는 소홀하다. 와이브로 이후 정보통신 R&D 투자는 대부분 축소됐다. 정부마저도 ‘작은 성취’에 매몰돼 통신기술 개발을 멀리했다.

 원천기술과 SW 응용기술 측면 모두 위험 수준이다. 기업 역시 상용기술과 응용기술 측면에서 경주하고 있지만 기초 및 원천기술에 이르면 말이 달라진다.

 그래서 그가 얘기한 행간의 의미는 ‘모어(more)론’에 입각한 우려로 읽혀야 한다.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무장하라는 얘기도 통섭의 관점으로 다시 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다져야 할 것은 단말기 차원의 작은 성취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름 아닌 HW, SW, 대중소기업 등이 어우러져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작은 지혜와 자기 혁신이라는 점이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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