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에 방송학도로서 2011 방송계를 돌아보면 씁쓸하기 한량없다. KBS 사장이 한국방송사상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으로 선출된 쾌거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더 앞선다. 방송정책의 난기류 현상, 종편을 네 개씩이나 허가하고 한꺼번에 조급하게 개국한 역사,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전송 난타전, 미디어렙의 혼미로 빚어지는 광고시장의 아우성, 수신료 인상의 혼미, 깔끔하지 못한 도청사건의 진상 등 참으로 어둡고 걱정스럽기만 한 방송계의 한 해였다.
방송사적 관점에서 2011년은 종편 탄생 하나만으로도 매우 중차대한 한 해였다. 종편 개국은 방송 생태계의 일대 변혁인 동시에 실제로는 한국방송제도가 공영 중심 시대에서 민영방송시대로 전환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부터 10년 주기로 재편되는 한국방송계는 방송사통폐합, 민영방송의 개방, 공영방송의 강화에 이어 이제는 급기야 민영방송 주축 시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판세에 정책적 사전 장치나 가이드라인도 없어 방송시장은 적자생존 방식의 약육강식 법칙이 지배할 것이고, 그리하여 상업성 위주의 저질화가 우려되기도 한다. 아울러 뚜렷한 차별화 없는 무릇 수백개의 채널이 허공에 떠돌 것 같다.
여기에 지상파와 케이블의 재전송 전쟁은 방송정책기관이 있으나마나 할 지경으로 점입가경이니 불이익은 애꿎은 시청자의 몫이 됐다. 국민이 무슨 죄가 있다고, 세상이 온통 정치판과 다를 게 없으니 방송의 앞날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방송의 독립성·공정성, 방송인의 이념 양극화도 염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밖에도 아쉬운 사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수신료 인상,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온전히 여야의 정치적 입장으로 기약 없이 떠도는 혼이 되고 말았으니. 아울러 수신료 인상 건으로 파생된 도청사건도 불명쾌해 훗날 못내 한국방송사를 괴롭힐 것만 같다. 방송인들의 순수성도 올 한 해 너무 훼손되고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 임원들의 청와대 진출도 저간의 사정이 있겠지만,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또 한 해가 기약 없이, 자그마한 희망의 끈도 없이 흘러만 간다. 그러나 어쩌랴. 자연의 순환 이치가 그러하거늘. 나도 세밑에 서서 감상적인 생각을 숨길 수 없지만, 새해에는 진정 거듭나는 한국방송계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려면 몇 가지 각별한 다짐과 실천이 필요하다. 선비정신을 가진 인재의 발굴, 미래를 내다보는 불편부당한 방송정책, 선공후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는 순수한 방송경영인의 등장 등이 이뤄져야만 한다. 2011보다 나은 2012 방송계를 간절히 염원하며, 총선과 대선의 해에 방송의 길이 의연하도록 지금부터 다짐하자.
김성호 객원논설위원·광운대 정보콘텐츠대학원장 kshkbh@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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