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꽉 채우고 직장을 옮겼다. “같은 일을 하고 싶지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경쟁사로 가기는 더 싫었고, 창업도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통상 진로를 생각하면 이직 기간이나 연유가 다소 엉뚱해 보인다.
지난 9월 솔브레인 사장으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조진욱(59) 전 한국바스프 회장은 “30여년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서 즐겁게 다시 일해보고 싶었다”고 뜻을 밝혔다. 전신인 테크노쎄미켐에서 얼마전 사명을 바꾼 솔브레인은 연매출 5000억원대로 성장한 토종 중견 소재 업체다. 창업주이자 대주주인 정지완 회장이 글로벌 첨단 전자소재 기업으로 제2의 도약을 이끌기 위해 강도 높은 변신을 추진 중이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로 조 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
조 사장은 지난 1981년 한국바스프에 입사한뒤 만 30년을 근무했다. 바스프가 한국에 둥지를 틀던 시기 합류해 성장을 같이했다. 마지막 5년은 최고 자리인 회장으로 아쉬울 것 없이 일했다.
화학업종에서 뼈가 굵은 그에게 솔브레인은 또 다른 도전이다. “소재 산업은 벽돌을 하나씩 쌓는 일과 같다. 그만큼 오랜 기간 많은 공을 들여야 결실을 볼 수 있는 사업이다. 특히 첨단 전자소재 사업은 전통적인 화학 업종과 달리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제조업의 성장 축이다.” 조 사장이 솔브레인에서 새로운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기대를 갖는 이유다.
그가 키워보고 싶은 솔브레인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첨단 소재 전문 회사다. 수치상으론 오는 2015년 연매출 1조원대의 중견 소재 업체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다. 대기업 관계사도 아닌 중견 소재 기업로선 버거워 보이는 일이다. 조 사장은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와 신규 사업, 인수합병(M&A), 해외 생산 거점 진출, 해외 우수 소재 업체들과 제휴 등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중소·중견 소재 업체로는 드물게 연구개발(R&D) 인력만 100명 넘게 확충한 것은 이를 위한 토대다.
그는 “국내 전자산업 고객사를 발판으로 고속 성장해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한계 또한 뛰어넘어야 할 시점”이라며 “M&A와 해외 투자·제휴 등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글로벌 화학 소재 기업 지역 대표에서 토종 중견 기업 CEO로 바뀐 두달여, 조 사장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지속적인 R&D 투자 여력과 인재 확보다.
“소재 산업에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기술 투자와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당면 과제를 반드시 돌파해내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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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