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다. 어느새 1년 12개월, 365일이 지나 새해 2012년이 다가온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자연적 시간을 1년과 1주일, 그리고 하루 단위로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다. 시간 개념은 음식이나 관습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을 통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지난 12월 1일, 한진해운 임직원들은 각자의 달력을 모두 2012년 새해 달력으로 바꿨다.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는 2012년 신년사가 올라왔고, 이날 구내식당 점심식사 메뉴도 떡국이었다. 새해가 아직 한 달 남았지만 한진해운은 12월 1일에 공식적으로 2012년을 시작한 것이다. 대내외 경제상황이 악화되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2011년을 빨리 보내고 한발 앞서 새해를 준비하자는 취지다. 한진해운 직원들에게 새해 2012년은 12개월이 아닌, 13개월로 늘어난 셈이다.
과거 왕조시대, 새 군주가 등극하면 자신만의 연호를 사용했던 것도 차별화를 위해서다. 1790년대 프랑스혁명 지도부는 공화국 건국일인 9월 22일을 1월 1일로 정했다. 1주일도 7일이 아닌 10일로 하고 한 달은 3주, 즉 30일로 통일했다. 이런 달력을 무려 13년간이나 사용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수많은 종류의 달력이 존재한다. 과거 우리나라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단군왕검이 즉위한 해를 기준으로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사용했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서력기원(서기·西紀)’을 쓴 것은 5·16 군사정변 이후다.
새해 첫날도 과거에는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구정(舊正)’이 출발점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평균 29.53059일 주기로 차고 기우는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생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설날’과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구정을 추억한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시간 설정 방법에 따른 민족사적 차이점에 주목한다.
1주일에 대한 시간 개념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현대인들은 보통 월·화·수·목·금요일에 일하고 토·일요일은 집에서 쉰다.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신념아래 하루도 쉬지 않는 사람 역시 많다. 반대로, 세상이 무너져도 일요일은 꼭 쉬어야 하는 종교도 있다.
‘하루’라는 시간단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해가 뜨면 일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휴식을 취했다. 지금은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순간이 곧 해가 뜨는 시각이다. 직장에서 컴퓨터를 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져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24시간 돌아가는 회사 서버와 휴대폰 문자메시지에는 한밤중에도 업무 관련 메일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는다’는 말로 정보기술 발전상을 표현한다. 세상은 지금 1일 24시간 쉼 없이 움직이며 돌아간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100년 전 ‘하루’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영업 현장을 뛰는 비즈니스맨들은 흔히 ‘1년은 10개월’이라고 말한다. 1년 동안 10개월은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2개월은 한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의미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다. 누구든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반복되는 곡선이다. 시작이 곧 끝이고, 출발점이 바로 종착점이다. 어디서 출발해 1년 12개월, 그리고 365일을 어떻게 나눠 쓰느냐는 순전히 우리 마음에 달렸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