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공공기관 CIO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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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터넷에선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창업했다면’이란 제목의 글이 회자됐다. 창업자가 대학중퇴여서 담보가 없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인터넷 실명제에 막혀 세계 진출은커녕 국내에서도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게임물등급위원회 사전심의로 세계 게임연동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아이템 결제에 액티브X 사용을 강제화해 사용자가 대거 이탈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다.

 사회 통념과 각종 규제가 한국판 페이스북 등장을 가로막고 있음을 풍자했다. 페이스북 발원지가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다면 실패작으로 끝났을 거라는 조롱 섞인 글이다. 한번 보고 웃고 말 글이지만 소프트웨어(SW)산업 종사자나 벤처기업 경영자들은 뼈가 담긴 그 글에 만감이 교차한다.

 내년도 공공부문 SW사업 수요예보 내용이 공개됐다. 공공정보화 사업 내년 예산은 2조7259억원으로 추산됐다. 올해보다는 1874억원 늘었고, 2008년 이후 최대치다. 하드웨어(HW)를 제외한 순수 SW관련 예산은 2조428억원이다. 이 가운데 80%가량이 내년 상반기에 집중될 것이란 전망도 함께 나왔다. SW 업계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여기에 뜻하지 않던 변수가 끼어들었다. IT서비스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사업 하한금액이 두 배로 오르면서다. 공공기관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간 습관처럼 의지했던 대기업 시스템통합(SI) 능력을 배제하자니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조달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IT서비스 대기업이 담당한 20억원 초과 공공사업은 356건이다. 이를 내년 1월부터 강화되는 40억원 초과 규정에 단순 대입하면 대기업 참여 건수는 69건으로 크게 준다. 기관 CIO 입장에선 대기업에 SI를 맡길 수 있는 프로젝트 건수가 예년의 5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셈이다. 향후엔 그 일을 소규모 SI업체에게 맡기거나 자체적으로 프로젝트 관리 전문조직(PMO)을 갖춰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럴 만한 조직도 없다. CIO로선 가슴 답답한 일이다.

 기관 CIO들은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차순위로 미뤄 둔 공공기관 내 PMO 제도 도입이 먼저라는 설명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야 하지만 내려온 지침이라곤 대기업 참여 하한제 강화내용 밖에 없으니 속이 터진다. 준비기간이 필요하니 상반기 발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말도 나온다. 이 상황에서 내년 사업 80% 상반기 집행 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은 커졌다.

 산업발전에 있어 지원만큼이나 중요한 건 적절한 규제다. 여기엔 시장 환경 및 논리에 맞는 치밀한 정책적 판단과 순서를 포함해야 한다. 정부 처방이 시장에서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최정훈 정보산업부장 jhcho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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