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의무를 담고 있는 ‘교토의정서’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년에 수명을 다 하는 교토의정서 연장여부를 판가름할 ‘제 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가 지난 28일 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렸다. 9일 막을 내리는 17차 총회에서 합의도출이 이뤄졌으면 하지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1997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공식 발효한 2005년 이후에도 세계 각국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16차 회의가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그랬고 작년 멕시코 칸쿤 회의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시원한 합의는 없었다. 칸쿤회의에서는 폐막 전날 밤샘 타협 끝에 2020년까지 빈곤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매년 1000억달러를 모금한다는 녹색기후기금 창설과 청정에너지 기술을 공유하기로 한 내용 등을 담은 타협안을 마련했다. 그나마 성과라면 코펜하겐 회의에서 이뤄진 구속력 없는 타협안을 약간 강화했다는 정도다.
작년 칸쿤회의에서는 2012년 만료하는 교토의정서 2기를 준비하되 올해까지는 국가의 참여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합의가 도출됐다. 나라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감축할지를 정하는 문제는 지금 열리고 있는 더반회의로 미뤄놓았었다.
더반 회의는 이미 시작됐고 9일 막을 내린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차는 여전하다.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다. 일본은 최근 열린 각료회의에서 교토의정서 체제를 단순히 연장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불참하겠다는 초강수를 던졌다. 더반회의에서 교토의정서를 내년 말 시한 이후로 연장하면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 참여와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인 중국 등을 포함한 새 체제를 주장해 왔지만 당장 실현이 어려워지자 교토의정서 체제 이탈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호소노 고시 일본 환경장관은 최근 “새 체제가 현실화할 때까지는 각국이 자율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어쩌면 14년 전 교토회의 주최국이었다는 자존심 때문에 벗어 던지지 못했던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족쇄를 이참에 훌훌 털어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국제사회 리더라는 미국은 일찌감치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다.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서는 리더라는 자존심 정도는 버릴 수 있다는 실리적인 판단이 앞선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의 제조공장인 중국은 어느새 온실가스 최다 배출 국가가 됐지만 개도국이기 때문에 교토의정서 상에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다. 인도 역시 세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지만 의무는 없다. 중국이나 인도는 교토의정서에 명시한 선진국은 기간 연장을 해서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고 개도국은 자발적으로 감축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기후변화 위기를 경고하며 온실가스 감축에 앞장서 온 선진국들이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하나 둘 실리를 택하고 있다. 장기화하는 경기침체와 무너지는 자국 산업 앞에서 지속가능한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한국은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COP18 유치에 실패했다. 선의의 경쟁을 해 온 카타르가 내년회의 개최국가로 결정됐다. 우리나라는 아무 조건 없이 대승적 차원에서 카타르에 양보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아시아의 단결력을 보여준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평가했다.
회의 유치는 못했지만 대한민국이 여전히 녹색성장 선도국이라는 인식은 국제사회에 심어주기 충분했다. 이제 남은 회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 체제는 연장하고 자발적 온실가스감축 활동을 부각해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만 남았다.
주문정·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