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배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에 올린 글이 연일 이야깃거리다.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고 썼다. 언론과 인터넷이 이 글을 두고 찬반으로 들끓었다. 특히 그제 최 판사를 제재할지를 논의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론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잘잘못을 따질 근거가 없던 터라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몇몇 언론과 누리꾼은 최 판사의 멱살을 놓지 않았다. “그게 법관이 할 소리냐”며 더욱 추켜잡았다. 답답했던지 최 판사는 “구체적인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판사도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표현권과 기본권을 가질 수 있다”고 직설했다.
그의 시각이 이치에 맞다. 판사 같은 국가공무원이든 일반 시민이든 ‘한 표’씩만 갖기로 뜻을 모은 까닭과 같다. 판사·경찰·군인도 한 시민으로서 SNS 같은 것을 얼마든지 곁에 둘 수 있다.직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한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다. 일상적으로 말하듯 인터넷에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글에 기분이 나빴거나 억울했다면? 법원으로 달려가 하소연할 일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반의사불벌죄’로 묶었겠는가. 최 판사의 글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거나 깔보여 욕됐다고 느낀 당사자가 나서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마녀사냥에 동조하기 전에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하는 게 옳다.
SNS를 곁에 두듯 일상과 인터넷이 한 묶음이 된 지 오래다. 명예훼손 등의 책임을 두고 인터넷 안팎 여부를 따질 게 아니라는 얘기인데 현실은 조금 이상하다. ‘임시조치’라는 가리개가 있다. A가 인터넷에 B에 관해 썼는데 그 내용(게시물)이 사실인지, 명예를 훼손했는지 등을 따지지 않는다. B가 원하면 일단 30일 동안 가려 준다. 30일 뒤 게시물을 되살릴지, 없앨지는 정보통신서비스사업자 마음대로다. 법원이 판단할 일을 B나 사업자가 예단하게 방치한 셈이다. 현행법이 딱 그렇고, 당국도 “절차상 미흡하다”고 보고 개선하기로 했다. 게시물을 가리기 전에 A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는 것, 가처분(임시조치)한 게시물의 사후 처리기준 등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상식에 어긋난 제도를 고친다니 환영할 일이되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은 당사자 간 문제다. 정부가 오지랖 넓게 이래라 저래라 할 게 아니다”고 보았다. 100% 동의한다. 지난 10월 방송인 이경실씨가 인터넷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겼다. 기소된 이아무개씨는 “조폭과의 불륜으로 (이경실씨가) 가정을 파괴했다”는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한 책임을 지고 벌금 200만원을 내야 한다. 새겨볼 판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터넷은 이런 판례가 쌓여 스스로 정화돼야 한다. 정부가 팔 걷고 나서면 오해를 살 뿐이다.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