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 몇 명과 정기적으로 만나 밥 먹으며 사업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시작했죠.”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59)이 모임을 결성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커질 줄은 처음에는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여름, 당시 하나TV 회장이었던 그는 회사를 SK그룹에 넘기면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은퇴를 선택하기에는 젊은 나이.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기업 경영을 계속하거나,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젊은이들과 노는 게 남는 일이라고 판단한 고 회장은 바로 사람을 모았다. 창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꼰대’가 아닌 ‘멘토’이자 친구로 대우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열정, 아이디어를 지닌 친구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컨설팅도 해주고, 투자자도 연결해주고 싶었지요. 이건 저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벤처포럼은 그렇게 시작됐다. 열 명이 채 안 되던 구성원도 입소문을 타고 차츰 늘어났다. 처음 식당 한 귀퉁이에서 열리던 모임도 점차 큰 공간으로 옮겨갔다. 포럼은 이제 매달 마지막 주면 200여명이 찾는 벤처업계 대형 모임으로 성장했다.
고 회장은 포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로 ‘갈증’을 꼽았다. 사회적으로 창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차원의 지원도 많아졌지만 정작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어떻게 성공 모델로 키워낼지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거든요.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상상 이상이고요. 부족하나마 네트워크를 쌓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 친구들이 고벤처포럼을 찾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포럼을 찾은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동업자를 구하고 투자자와 만난다. 미완의 아이디어를 다듬을 수 있는 계기도 된다는 것이 고 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포럼이 창업을 고민하는 이에게만 열린 공간은 아니다. 기술·투자 같은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만 삶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도 전하는 덕분이다. 창업이 아닌 취업을 선택한 이들도 포럼에서 중요한 삶의 밑천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고 회장의 가치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사업에 대한 상상력은 기술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며 “기업가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초청하는 강사 가운데 인문학 관련 내용을 전하는 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 없이 기술만 가지고 창업에 접근하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돈만 보고 달려들었다가 좋지 않은 결말에 이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급적이면 젊은이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합니다.”
고 회장은 창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건 창업보다 문화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 졸업생 70%가 창업을 고민한다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죄다 고시공부로 몰립니다. 이를 젊은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요. 미국 부모들은 자녀가 창업한다면 격려해주지만 우리는 말립니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부가 창업을 장려해도 진전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입니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