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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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이 착용하지 않는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공유하세요.’

 뉴질랜드의 한 인터넷 사이트(www.iswish.com) 첫 화면에 올라온 내용이다. 이 사이트는 더는 입지 않는, 또는 쓰지 않는 물품을 교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핸드백 등 비교적 사용주기가 짧은 물품도 이곳에 올려놓고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팔 수도 있다. 가입비는 무료다. 그 대신 운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옷장 안에 옷이 가득하지만 정작 입을 만한 것은 없어 불만이라면 이 사이트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다른 사람의 옷과 바꿀 수 있다.

 #2. ‘한두 시간 정도 차를 빌리고 싶은데 렌터카를 쓰기엔 부담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딱 필요한 서비스가 있다. 그린카(www.greencar.co.kr)가 바로 그것이다. 기존 렌터카는 차량을 빌릴 때마다 계약서를 작성하며 최소 1일 이상 빌려야만 했다. 도심에서 필요할 때만 잠시 사용하고 반납하기엔 번거롭기만 하다. 그린카 서비스는 이 같은 불편함을 없앴다. 가입할 때 기본 사항만 입력하면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차량을 빌릴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 성공한 카셰어링 서비스인 ‘집카(zipcar)’의 한국판인 셈이다.

 

 ◇공유경제가 뜬다=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품을 교환하는 일은 새로운 모습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교환과 공유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모습이 최근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공유경제(EOC:The Economy Of Communion)는 기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작된 일종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마리아사업회를 이끌던 이탈리아의 키아라 루빅 여사가 1991년 브라질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빈민가와 초고층 건물이 대비된 모습을 보며 종교에서 전하는 나눔의 가치를 하나의 사업 모델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업 이익의 3분의 1을 기업에 재투자하고, 3분의 1은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머지는 공유경제를 전파할 사람을 양성하는 데 쓰자는 생각은 이때 만들어졌다.

 그의 관심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 구축한 관계를 기반으로 수익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이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은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재화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얻는 만족보다 다른 사람과 공유할 때 얻는 행복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공유경제에 기반을 둔 사업모델 ‘메시’=최근 공유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 사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루빅 여사가 제안한 3분의 1 분배 방식을 철저히 따르지 않더라도 혹은 종교적인 믿음이 없더라도 나눔이나 공유가 기업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업방송 웹사이트 GNN의 공동 설립자인 리사 갠스키는 이러한 흐름을 ‘메시(mesh)’라고 표현했다. 그는 메시에 대해 동명의 저서에서 “고객이 필요한 순간, 그들이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잠시 사용하게 한 뒤 이를 돌려받거나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 모델”이라고 정의했다.

 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소비는 기본 뼈대에 해당한다. 기업은 잘 팔릴 만한 제품을 생산해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소비자는 경쟁적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린다.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은 쓸 수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흥미가 떨어졌다거나 다른 물건에 시선이 끌리면서 기존에 소유한 물건은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은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내놓아 소비자 시선 끌기에 나서게 됐다. 한정된 자원은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했다. 100여년간 지속한 인식이 점차 변하면서 메시 산업이 성장할 토대가 마련됐다는 것이 갠스키의 주장이다.

 그는 변화의 계기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경제위기는 ‘기존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냈다. 둘째, 경제위기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셋째, ‘기후 변화’는 전반적으로 기업 운영비용을 끌어올렸으며 쓰고 버리는 상품을 만들고 파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넷째, 증가하는 인구와 가속화되는 도시화는 인구밀도를 높여 메시 생태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다섯째,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 발전으로 기업은 더 나은 서비스가 필요할 때 더 개인화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달성했다.

 정리하자면 경제·문화적인 변화와 기술 발달이 새로운 산업 부흥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택·자동차 등 소유한 재화 구매·유지비용은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고 이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가운데 GPS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 보급, 모바일 네트워크 확산,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성장 등은 굳이 재화를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않고도 혜택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사고를 전환하라=변화하는 조류를 빠르게 포착해 성공한 기업도 늘고 있다. 넷플릭스는 기존 방송 산업 구조를 깨고 콘텐츠 산업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냈다. 넥플릭스는 어느새 기존 미디어 산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카는 기존 렌터카 업체를 뛰어넘으며 영국, 스페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존 제조 중심 대기업이 펼쳐온 사업 구조와 다르게 유지비용은 최소화하면서도 고객의 요구는 최대한으로 수용했다는 특징을 지녔다.

 갠스키는 “오늘날 전통적인 기업 운영방식에서 자원을 활용하는 비용은 치솟고 있는 반면에 새롭게 시작하는 기업은 팀, 도구, 현금, 인프라 등 많은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며 “회사를 새로 세우고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밀고 나가기 시작할 아주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조 중심 대기업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마케팅, 경영 등에 메시 산업의 접근 방식을 차용하면 변화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

 갠스키는 그의 저서에 대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메시 전략을 소개했다. 메시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서비스나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자원과 정보를 공유해 제휴업체와 진정한 관계를 맺고 메시 생태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생존과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고객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포착하는 일이라고 갠스키는 지적했다.

 

 ◇메시 사업 모델 채택 사례 (자료 : www.meshing.it)

 Adorn(www.adorn.com)-특별한 날을 위한 보석 대여 서비스

 Exboyfriend Jewelry(www.exboyfriendjewelry.com)-예전 애인에게 받은 보석을 교환하도록 중개해주는 플랫폼

 Art Rent & Lease(www.artrentandlease.com)-예술작품 대여

 Trust Art(www.trustart.org)-공공예술작품 발주하는 소셜 플랫폼

 BookMooch(www.bookmooch.com)-포인트 기반 책 교환 시스템. 책을 주면서 포인트를 벌고 다른 사람의 책을 받으면서 포인트를 씀

 Exuve(www.exuve.com)-회원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이 평가. 높은 점수를 받은 옷은 온라인 상점에서 구입 가능

 Get Satisfaction(www.getsatisfaction.com)-제품 서비스 개선을 위해 고객과 기업이 공개적으로 소통하도록 연결하는 플랫폼

 School of Everything(www.schoolofeverything.com)-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도록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Community Wind(www.windustry.org/communitywind)-풍력발전기를 구축하고 소유해 공동체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도모

 People Capital(www.people2capital.com)-학업적인 재능을 담보 삼아 학생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빌릴 수 있도록 연결

 SuperRewards(www.srpoints.com)-디지털 콘텐츠를 수익으로 전환하도록 지원하는 사이트

 Urban Garden Share(www.urbangardenshare.org)-사용하지 않는 정원을 가꾸고 싶은 사람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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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기자 k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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