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공생발전형 소프트웨어(SW) 생태계 구축 전략’이 소개됐다. 범부처 차원 SW 종합대책이다. ‘공생발전’ ‘생태계 구축’ 등 전략 제목에 나열된 단어들은 보기만 해도 흡족하다.
전략 아래 나열된 각론 또한 화려하다. SW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SW 기초체력과 SW융합도 강화한다. 지속 추진체계 마련도 약속했다. 근사하다.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지경부는 서둘러 후속조치를 내놨다. 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 하한금액(고시)개정안을 마련, 지난 11일 행정예고했다. 웬일로 민첩하다. 개정안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연매출 8000억원 이상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SW 사업 하한선은 종전 40억원에서 80억원으로 올랐다. 그동안 SW 공정거래를 해친 주범이 대기업 때문이라고 하니 당연한 조치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협력업체와 나눠야할 수익을 혼자 챙겼다면 그동안 대기업은 공공 프로젝트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게다. 그런데도 대기업 사이에선 공공 프로젝트가 소위 ‘똔똔’하면 잘 한 장사로 통한다. 왜 그럴까.
최저가 입찰방식이 문제다.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출혈경쟁은 다반사다. 출혈경쟁 폐해는 협력업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프로젝트 품질은 나빠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모순 구조를 잘 아는 글로벌 IT서비스 기업은 입찰에 참여조차 않는다.
이를 조장한 건 다름 아닌 정부다. 십수년간 최저가 입찰방식 문제는 누차 지적됐지만 정부는 모르쇠다. 이번 생태계 구축 전략에도 해결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기업이 빠진 대신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 또 다른 희생양이 나오게 마련이다. 하한금액만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유지보수대가도 문제다. 정부가 외산 솔루션 기업에게 지불하는 상용SW 유지보수대가는 평균 22%다. 반면에 국산은 평균 8~9%다. 국내 SW 기업에 편파적인 낮은 대가가 기업의 재투자를 막는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정확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당장 내년부터 뭔가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미 내년 예산에 인상안이 반영됐어야 한다. 연구자들이 분석해 제출한 현실화 방안(15%로 인상)은 수개월째 담당 공무원 책상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감감무소식이다. 해당 부처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얘기만 반복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태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참 많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이번 전략방안에 담긴 내용만해도 십 수 가지다. SW 산업부흥에 포퓰리즘은 금물이다. 칼을 뽑았다면 일사천리로 추진하자. ‘골치 아프다’ ‘새해엔 보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 기대를 접어라. 이젠 각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지체 없이 실천할 때다. 산업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일이다.
최정훈 정보산업부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