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년 10월, 베르너 폰 지멘스와 그의 파트너 요안 게오그르 할스케는 ‘Telegraphen Bauanstalt von Simense & Halske’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
전신시설을 비롯한 기타 전기설비 건설을 목적으로 독일 베를린의 허름한 창고 공방에서 출발할 당시 직원은 고작 10명이었다. 164년이 지나 이 기업이 지구 전역에서 760억유로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40만5000명의 다국적 직원을 보유한 공룡이 돼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하루에도 수천 개의 기업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현실에서 160여년 동안 혁신을 외쳐온 기업. 지속가능(Sustainability)을 꿈꾸는 기업은 지멘스라는 이름을 주목하고 있다.
◇160년 혁신 역사=1850년대 지멘스가 수행한 전체 길이 1만㎞ 러시아 주정부 소유 전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공사. 전선기술이 점차 발전하던 당시 지멘스는 세계시장의 잠재성을 간파하고 일찍이 해외시장 개척에 눈을 돌렸다. 그 결과 러시아에서 사업을 수주하기에 이른다. 독일에서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공사를 완수한 지멘스가 유명세를 탄 것은 이 공사가 끝난 뒤였다.
지멘스 창업주 베르너 폰 지멘스는 완벽한 세계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미리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한 직원들을 러시아로 이주시켰고 이들은 시설 보수 유지를 담당하며 고객에게 최상의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전례없는 조치로 지멘스는 자신들의 핵심가치를 유럽에 널리 알렸다. 혁신경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노동 개념이 명확히 잡혀있지 않던 1873년 지멘스는 당대 독일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9시간 표준 노동시간을 도입했고 1891년 이마저 8시간 반으로 단축시켰다. 당시 대부분의 회사가 1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을 고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파격에 가까운 조치였다.
1888년에는 최초로 회사 소속 의사를 임명해 일터에 대기할 수 있도록 했고 1910년에는 사내 휴식공간 에터스하우스를 만들어 근로자 복지 개선에도 앞장섰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5년 회사 소유 아파트 973채를 지어 직원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첫해에는 많은 양의 상여금을 지급하며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어 나갔다.
◇지속가능이 최우선 가치=지멘스의 이러한 혁신경영은 “나는 단기간의 이익에 우리의 미래를 팔지 않을 것이다(I won’t sell the future for short-term profits)”는 신념을 갖고 있던 설립자 베르너 폰 지멘스 경영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에 편승하는 기업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창업자의 철학과 함께 지속가능을 기업 핵심가치로 삼았던 것이 오늘날의 지멘스를 만들었다.
지멘스 사후에도 경영진은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를 단단히 다져 나갔다. 첫 번째 변화는 1897년, 지멘스를 공동합작 주식회사로 바꾼 것이다. 지멘스는 주식회사로 변모하면서 점차 커져가는 자금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이후 선별적인 기업인수와 파트너십으로 주 사업영역인 전기공학분야 포트폴리오 강화에 주력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
지멘스는 발전기·케이블·전화·전력·전등을 비롯한 2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1879년 전력 공급 시스템을 사용하는 최초의 전철 자동차를 개발했고 1881년 베를린에 전차를, 1890년대에 런던과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을 완공했다. 1920년대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자현미경을 제조하기 시작했으며 이어 1950년대 컴퓨터 반도체 기기, 세탁기, 심장박동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후 1980년대 최초의 디지털 방식 전화 교환 시스템을 생산했으며 1997년 최초로 컬러 액정 GSM폰을 개발하는 등 사업 다각화 및 지속가능한 포토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멘스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지난 1966년이다. 지멘스운트할스케, 지멘스-슈케르트베르케, 지멘스-라이니거베르케가 합병하면서 지멘스 공동합작 주식회사가 출범했고 1969년 조직 재개편이 이어졌다.
3개 핵심 기업 합병으로 오늘날의 지멘스 AG가 탄생했고 다양한 사업 부문이 지멘스 AG기초 조직을 토대로 태어났다. 이때 계열사들은 독립된 회사들로 분사했는데 1980년대 들어 세계화와 시장 규제완화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면서 중앙 집권적인 경영체제에서 벗어나 각 계열사에 최대한 자치권을 주는 형태로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1990년 말 이후로는 중국과 인도·남미·미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성장에 발맞춰 현지화 전략에 주력했다. 현지 기업 인수 합병 및 사업 다각화, 전략적 합작 투자 등으로 지멘스는 세계 전역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다음 100년은 친환경에서=지멘스는 현재 산업·에너지·헬스케어를 중심으로 사업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산업 부문은 제조 및 공정 자동화, 교통 그리고 빌딩 시스템 분야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합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건물, 도로 등이 지어지면 실제로 이를 효율적이고 쉽게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건물 보안·냉난방·수도·전력 등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지멘스 솔루션이 적용된 건물은 세계 도시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에너지사업 부문에서 지멘스는 다른 기업보다 한 발 앞서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터빈 제조를 기반으로 풍력 분야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7000개 이상의 풍력 터빈을 설치해 해외 사업 부문에서 풍력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발전과 송변전, 석유 및 가스 추출 변환, 운송관련 제품 및 솔루션 제조 분야에서도 지멘스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질병의 예방과 진단, 치료를 위한 영상 진단 제품 및 IT 솔루션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분야는 지멘스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기도 하다.
지멘스는 이와 함께 오는 10월 네 번째 사업 부문인 인프라와 도시(Infrastructure & Cities)를 본사 및 전 세계 지사에서 출범시킨다.
세계 GDP의 50%를 차지하고 80%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75%의 이산화탄소(CO₂)를 배출하는 도시에서 새롭게 파생되고 있는 사업기회를 선점한다는 전략이다. 도시화라는 전 지구적인 트렌드를 읽고 R&D를 기반으로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는 지멘스의 모습은 1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지멘스는 4개 사업군에서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2007년 외부감사기관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tm에 의뢰, 친환경 포트폴리오 및 관련 사업을 수치화해 오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기술 개발 R&D에 연간 매출의 5% 이상을 투자하며 다양한 미래 먹을거리 창출에 힘쓰고 있다.
오는 2014년 친환경 기술로 매출을 400억유로로 올린다는 목표다. 2011년까지 250억유로 이상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기존 목표는 지난해 280억유로 매출을 올리며 이미 초과 달성했다.
지멘스는 지난해 친환경 포트폴리오 제품과 솔루션으로 세계 고객의 CO₂ 배출량 총 2억7000만톤을 절감했다. 이는 홍콩·런던·뉴욕·도쿄·델리와 싱가포르의 연간 CO₂ 배출량을 합친 것과 같다.
지멘스는 고효율 복합 사이클 발전소, 풍력, 발전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고효율 조명시스템과 친환경 열차 등 지난해 가장 많은 CO₂를 절감한 분야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2014년까지 60억유로 규모의 수주를 예상하고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