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탈세` 권하는 세상

 반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짦은 기자회견이 절정이다. 방송인 강호동씨는 쏟아진 비난을 단숨에 동정으로 바꿨다. 이를 ‘쇼’로 보는 이도 있지만 많은 이가 그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는 ‘은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강수를 뒀다. ‘실수’니 하는 틀에 박힌 핑계도 대지 않았다. 무엇보다 국민 정서를 잘 읽었다. “뻔뻔하게 TV에 나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그간 물의를 일으킨 이들의 상투적인 행동과 사뭇 달랐다. 스스로를 버리는 태도가 그를 살렸다.

 극적인 반전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갖가지 음모론이 판친다. 그럴 듯한 것도 있지만 터무니없는 게 많다. 두 가지는 확실하다. 종합편성채널(종편) 행을 둘러싼 강호동과 KBS의 갈등은 새 국면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의무, ‘납세’를 새삼 생각하게 됐다.

 강호동은 월급쟁이가 꿈도 못 꾸는 수입을 올린다. 그가 정말 ‘탈세’를 했는지, ‘절세’를 하려다 여의치 못했는지 알 수 없다. 탈세라 해도 그를 향한 비난은 조금 지나쳤다. 우리나라야말로 탈세를 부추기는 사회 아닌가. 강호동이 올린 수입보다 뒤에 0이 더 붙은 수입을 올리면서 의도적으로 세금을 안 내는 ‘철면피’가 TV고발 프로그램에 넘쳐난다.

 제도마저 탈세를 부추긴다. 세수 비중이 가장 큰 부가가치세가 그렇다. 소비자가 1100원짜리 상품을 사면 동시에 100원의 부가세를 낸다. 파는 사람은 손도 못대는 돈이다. 실제 수입은 1000원이나 과세 매출은 1100원이다. 정상적인 업주라면 매출 신고액을 낮추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몇 천원짜리 상품을 현금 아닌 신용카드를 사는 소비자에 괜한 눈치를 준다. 해법은 ‘부가세별도’ 징수다. 실 매출과 과세 매출이 동일하다. 아주 명료한데도 소비자가 반발한다. 왠지 돈을 더 내고, 업주가 더 챙긴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주유소협회가 신용카드 수수료 부과 방식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헌법 소원을 낼 태세다. 신용카드 수수료는 기름 판매금액을 기준을 삼는다. 기름 값이 오르면 신용카드는 앉아서 수익을 챙긴다. 그런데 기름값 절반이 세금이다. 정부가 걷는 세금에 대한 수수료를 주유소가 부담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을 숨김없이 신고하면 손해다. 당장 의료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고소득자로 분류되니 각종 복지 혜택도 줄어든다. 세금을 꼬박꼬박 잘 냈다고 신용등급이 확 올라 대출을 더 쉽게 많이 받는 일도 없다. ‘칭찬’은커녕 ‘바보’ 취급만 받는다. 세금을 더 낼 욕구가 생기겠는가.

 국세청은 ‘세금 잘 내라’고 유명인을 홍보대사로 내세울 게 아니다. 세무 정보까지 누설해 압박할 게 아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꼼짝 못하는 증거로 탈세를 잡아내고, 탈세보다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게 이익인 구조부터 만들 일이다. 이것만 잘해도 납세자는 세금을 잘 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세금을 올려도 반기는 납세자가 나올 모른다.

 우리 국민의 세금 부담은 주요 선진국보다 결코 크지 않다. 선진국의 세금은 연예인은 물론이고 기업까지 비난을 무릅쓰고 국적을 옮길 정도로 쎄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의 불만이 높은 이유가 뭘까. 아마도 탈세를 하고도 떵떵거리며 잘사는 사람이 많아 그렇지 않을까.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버는 사람이 몇 천만 원 받는 월급쟁이와 똑같은 의료보험료를 낸다. 요즘 미국과 유럽의 부자들은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한다. ‘극과 극’ 체험이다.

 어느 사회나 탈세는 가장 큰 경제 범죄다. 우리나라는 어떨 때 탈세에 너무 관대하다. 더 큰 문제는 절세보다 탈세 유혹이 더 넘친다는 점이다. ‘탈세 리얼리티 쇼’가 시즌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방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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